꽹가리 시계와 낫 제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먹다 남은 오징어와
땅콩.

서양화가 김정헌씨(47.공주대교수)의 작업실은 살아있는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전한다.

동시대의 삶과 무관하지 않고 나아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생명을
잃지 않을 그림을 그리려는 작가의 강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20평
작업실에 가득 배어 있는것.

오는 6월 4~14일 서울종로구관훈동 학고재(739-4937)에서 가질 세번째
기인전에 김씨가 내놓을 작품은 "말목장터 감나무" "흙을 생각하는 어느
시인의 아파트" "땅과 더불어 " "흙에 관한 명상" "황토현의 흙탑" "땅의
사람들" "저탄장부근"등 40여점.

완성됐거나 마무리상태인 작품들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흙과 땅,엄밀하게
말하면 흙과 땅의 생명력을 주제로 하고있다.

"크고 높은 산이 아니라 야트막하고 별볼일 없는 야산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그들이 사용하는 농기구같은 것들을 그립니다. 얼핏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속에야말로 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고자
지닌 무엇인가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화면 속에는 잎 없이 가지만 남아 있는 이른봄 감나무가 있는가 하면 벌건
황토흙과 쟁기 삽 가래가 있다. 언땅을 비집고 솟아나는 질경이가 있고
고봉으로 펴담아진 밥그릇이 수저와 함께 놓여있다.

종래 그의 작품을 지배하던 녹색 대신 황토색으로 가득한 화면은 조용하고
말없는 것들이 지니는 힘을 느끼게 한다.

"김지하형의 생명철학론을 들으면서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김종철씨가
펴내는 "녹색평론"을 읽으면서도 땅과 흙의 문제를 생각했지요. 감나무를
보면 가지들이 생겨나는데도 나름대로의 규칙과 질서,계획이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숱한 가지들이 각기 자신의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편안하고 푸근한것,변하지 않는것들을 통해 진정으로 강한 힘,세상을
지탱하는 진짜기둥이 무엇인가를 전하고자 하는데 대한 변이다.

김씨는는 평양 태생으로 서울대미대와 동대학원을 나왔으며
민조미술협의회대표를 역임했다. 현실과발언창립전 문제작가작품전
통일전등에 참가했고 공주교도소 벽화 "꿈과 기도"를 제작했다.

<글박성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