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교역확대 기술협력 등 경제환경에도 큰 변화
정치.외교적성과 급급 경제적실리엔 회의적

6공 5년간의 치적1호로 흔히 손꼽히는것이 "북방외교의 만개"다. 그리고
이같은 선택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공산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고 통상을
확대하게된것은 5년전 어느누구도 감히 장담할수 없었던 일이었다.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국제평화를 논하게된점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편에서는 이러한 성과에 대한 평가절하의 분석도 없지않다.
북방외교가 우리 자력이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체제붕괴라는 국제환경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일부국가와 경협자금 제공을
전제로 국교수립교섭에 나선점등도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해도 불과5년만에 구소련 중국등
20여개나라와 국교를 수립하고 통상할수 있는 길을 연것은 커다란 변화이자
업적이라 할수있을것 같다.

6공의 북방정책이 만개의 가능성을 예고한 시그널은 지난88년에 있었던
노태우대통령의 7.7선언. 서울올림픽을 두달여앞두고 발표된 이 선언에서
정부는 모든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문호개방과 관계개선의지를 천명했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듬해 2월에는 동구권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정식국교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후 대동구권 수교행보는 더욱 빠른 템포를 탔다. 89년중에는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90년들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몽골등과
잇따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북방외교의 하이라이트가 된 소련과의 관계정상화는 90년6월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의 역사적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이 열린지
3개월후에 이루어졌다. 작년8월과 12월에는 마침내 중국 베트남등과도
정식 수교함으로써 6공의 숨가쁜 "수교장정"은 일단락을 맺기에 이른다.

북방외교의 진전은 지난5년동안 우리경제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들 나라와의 교역확대는 물론 자원.기술협력 현지투자등이
급속도로 증대됐다.

6공출범 첫해인 87년도 북방국가와의 총규모는 20억8천8백만달러였다.
이것이 지난91년에는 2.4배인 81억달러로 불었다. 작년에는 10월말까지만
83억달러를 기록,연간실적이 1백억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과의 교역확대 추세는 특히 주목할만하다. 올한햇동안 수출입 총액이
1백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미국 일본에이어 중국이 우리의
제3교역상대국으로 부상한 셈이다.

북방교역의 규모확대못지않게 최근에는 교역수지도 급격히 개선되는
추세다. 91년에는 전체 북방교역수지가 5억9천만달러적자를 보였지만
작년에는 10월말까지만 6억3천5백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나라별로는
구소련을 제외한 중국 동구권 베트남등 대부분 국가와의 교역에서 우리가
흑자를 본것으로 분석된다.

자원협력분야도 교역못지않게 우리의 관심을 모았다. 88년 3억달러였던
북방자원도입규모는 91년 5억달러,92년에는 8월말까지만 이미4억달러를
넘어선것으로 집계되고있다.

북방국가들의 엄청난 자원잠재력을 감안할때 그 개발에대한 관심이
높아진것은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 베트남 중국등과 대규모 천연가스 석유
삼림 광산개발을위한 협력이 지금 상당히 진척되고 있기도하다.

북방외교의 진전과함께 나타난 또하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이들 나라에대한
우리 제조업의 "투자열기"를 들수있다. 6공출범 첫해 북방국가들에대한
투자는 단1건(중국)에 불과했다. 이것이 88년 5건,89년 14건,90년
42건,91년 1백23건(8천3백만달러)등으로 불어났다. 지난해에는
11월까지만도 2백65건(3억1천1백만달러)에 이른것으로 나타나고있다. 가히
기하급수적 증가라 할만하다.

그런가하면 이같은 북방투자 열기는 필연적으로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촉진시킨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초기 우리기업들의 앞뒤안가린
무턱댄 진출이 가져다준 부작용 또한 심각히 제기됐다.

6공의 북방외교 성과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기대를
모았다. 구소련등이 보유한 첨단기초기술 도입,항공망
확대,통신교류강화,여행업활성화등이 이른바 그런것들이다.

그렇다고 6공의 북방정책이 모든면에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것은
아니다. 정치적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경제적 실리를 얻는데는 미진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산체제 붕괴라는 국제적 환경변화를 제대로 읽지못하고
시종 저자세로 일관한 수교추진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소련이나 헝가리 폴란드등과의 국교수립시 경협자금지원을 약속한것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수있다. 많게는 30억달러에서 적게는 4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이 경협자금지원 약속은 결국 "돈으로 외교를 샀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아울러 여타국가와의 국교수립 협상과정에서 하나의 선례가돼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더구나 나라별로는 당초 약속사항이 지켜지지않아 우리정부의 신뢰성에
흠집을낸 경우도 없지않다. 구소련에대한 지원은 연방해체로 그
회수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가 북방국가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관련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나타난 부작용도 흔히 지적되곤한다. 이에따라 민간기업차원에서는
부정확한 정보의 만연으로 투자나 교역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수없었다는
것이다.

대북한관련부문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북방정책 추진과정에서 북한을
대화창구로 끌어내 남북관계를 보다 진전시킬수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6공 5년은 북방외교의 꽃을 피운시기로 기록됨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외형적 성과에비해 내실이 어떠했느냐는 점은 좀더 세월이
지난후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는 분명하다. 지난5년동안
세워진 가시적 성과위에 보다 알찬 열매를 열리게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열매가운데는 북한이 포함되고 나아가 통일의 열매도 함께 딸수있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면 종] 3면 종합해설
[저 자] 김기웅 기자
[사 진] 91년 4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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