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제도이자 축제다. 열광의
축제를 치르고나면 상쾌함과 따스함,고요함과 차분함이 마음속에 찾아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가 끝나버린 자리에 일말의 앙금이
남는것은 어찌된 일일까.

지난 30일동안은 정치 일변도의 회오리에 휘말린 한달이었다.
신문지면도,전파영상매체들도 대통령선거관련 보도와 사건들로 가득
메워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도,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으레히 선거가
화제로 등장했다. 후보들의 정책 인물 득표예상을 비롯 후보들간의
흑색선전 진위가 화제의 주된 초점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정치에
귀속되어 있기라도 하듯 그밖의 세상사의 존재를 망각지대에 묻어버렸다.
국가라는 수레가 굴러가려면 그것을 굴려주는 민생을 비롯한 하부구조인
바퀴가 필요한데도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음 5년동안
국가를 경영해갈 지도자를 뽑는 마당이고 보면 어느것보다 중요한
막중대사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한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그 일에만
매어달리는 한국인들의 다혈질적인 특성이 드러난 것이라고나 할까. 굳이
꼭 집어 말한다면 한국적 망각증상일수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거는 유권자들의 기대는 오늘의 경제난국을 헤쳐나갈
지도자를 뽑는 것이었다. 선거전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것은 실종되어
버렸다. 금권 관권 색깔논쟁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아 유권자들을
미로에서 헤매게 했다.

더구나 각 정당이 내놓은 공약들이라고 해야 국내외적으로 난관에
봉착해있는 경제현실의 매듭을 하나 하나 풀어나갈수 있는 대안들도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표얻기에 급급하다 보니 실천불가능하거나 다분히
구호적이고 명분적인 공약,특정지역에 영합하는 공약들이 나열식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국민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겠다는 정치집단들이
내놓은 것들이 경제회생의넓은 혜안을 지니지 못하고 민생의 어려움과
아픔을 제대로 읽지 못한 단견들만을 내놓았을때 실망은 컸다. 경제주체인
가계는 물론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선거기간동안 정치의 향연에 밀려 깊은 침체의 늪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기업들은 그 치유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내놓은
제품이 매장에 쌓인채 연말인데도 고객의 발길을 불러 들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경제의 실상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는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맹자도
중국 산동성에 있던 나라인 의 문공으로부터 정치의 방법을 문의받고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면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다(무항산자무항심)"고
하지 않았던가.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당선소감에서 "민생중심의
생활정치를 열어 가겠다"고 피력한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들의 가슴을 무엇보다도 무겁게 하는 것은 지역별
득표분포다. 지난13대 대통령선거때와 마찬가지로 동서의 분열과 갈등현상
표출이다. 물론 대통령제 민주정치의 본산이라 할수 있는 미국에서도 주에
따라 어느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처럼 특정지역출신의 후보에게만 표를 던져주는 파당적 지역이기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후보들만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
동서분파병이 자연히 해소될수 있다는 단순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에 앞서
우리는 제3공화국출범 이후 뿌리내리기 시작한 균열의 밑바닥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 지역출신의 대통령들이 줄이어 오랜 기간을 집권하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차별화가 진행된데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것을 지역간의 감정의
차원으로까지 심화시킨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것을 멀리 삼국시대로
비약시키는 논리는 금물이다. 해방이후 제3공화국 이전까지
동서지역갈등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축제뒤의 이러한 앙금들을 풀어 나가는 혜안이 새로운 대통령에게는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