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망중소기업 사장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자살함으로써 큰충격을
주고있다. 죽은 한국기체공업사장 구천수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동차충격흡수장치의 국산화에 성공하여 "우수중소기업대상"까지 받은
건실한 기업인으로서 과중한 연구개발투자에 따른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한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어느나라나 중소기업의 처지가 어려운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조직.인력.자금등 어느것 하나 대기업에 비해 유리하지 못한
처지에서 빠른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전문기술의 특화와 개발등을 무기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창조적
혁신"(innovation)은 기업활동의 핵심으로서 경기침체를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은 다른나라에 비해 훨씬더
어려운 실정이다. 복잡한 절차와 정부규제,담보없이는 돈을 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금융풍토,장사가 된다싶으면 업종을 가리지않고 밀고들어오는
대기업집단의 문어발식 확장,납품뒤에도 몇달짜리 어음이라도 받을수
있으면 다행인 거래선의 횡포등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품질개선을 꿈도 꾸지
못한채 하루하루 기업을 꾸려가기 급급하며 기업체질이 매우 허약하다.
경기침체와 거래기업의 도산에 따른 연쇄부도로 지난 한해동안에만
6,159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올해에도 지난 9월말까지 부도를 낸
중소기업의 수가 7,560개로 크게 늘어난것이 이러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구사장의 죽음은 불운한 개인의 좌절로 볼수만은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그의 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정책은 말만 요란할뿐 정작 은행창구에서는 담보부족을
이유로 자금지원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마치 정부가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발벗고 나선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한 예로 정부는 올해 상반기중에 2,500억원을 유망 중소기업에 지원하도록
결정했으나 지원대상 기업의 담보부족으로 지원실적이 매우 적어
감독관청이 나서기까지 했다. 또한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을 채우기위해
대출하다보니 제조업체보다 서비스업체에 자금지원이 되기도 하는데
업종제한이 없기 때문에 지원취지를 살릴 길도 없다.

물론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사장이
경영하던 한국기체공업의 경우 유망중소기업으로서 기술선진화업체와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돼 많은 혜택을 받았으며 7개 금융기관으로부터
50여억원의 대출도 받았다.

우리 실정에 이정도의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한국기체공업의 도산에는 매출규모에 비해 무리한 기술개발투자와
대기업과의 판매경쟁에 따른 부담등 경영자의 책임도 적지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살펴보아야할 진짜 큰문제는 정부지원이 있었는가
없었는가,경영책임이 큰가 작은가라기보다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정책은
어떻게 해야 기술개발과 경제발전에 효과적인가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술개발이 에디슨과 같은 천재발명가의 개인적인 업적에
의존했으나 오늘날에는 정부와 기업이 조직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여러나라는 보다 효율적으로 기술을 연구개발하기 위해
기업조직과 정부지원정책을 가다듬기에 바쁘다.

특히 기술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시장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기술개발노력에 따르는 위험부담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자금지원과 위험부담의 공유를 통해 장래에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모험기업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질서와 금융시장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바로 이점에서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정책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만 요란하다고 비판받게 된다. 대기업집단이
상호지급보증 등을 통해 금융자원을 독차지하고 금리가 일률적으로
규제받는 상황에서 은행의 대출심사기능은 사라지고 담보요구만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험프리미엄을 아무리 비싸게 준다해도 금융기관은
위험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으며 질 필요도 없다.

애써 개발된 국산기술이 살아남을수 있도록 특허보호강화,정당한 이유없이
납품선을 제한하는 불공정거래단속,외국제품의 덤핑규제등 시장질서를 바로
잡는 일도 중요함은 물론이다.

더이상 이번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고 우리경제가 건실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금융기관과 정부가 모두
자기영역에서 책임을 나누어지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