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캘린더한장이 벽에 붙어있다. 어느새 여기 섰는가
싶으니,절로 감회가 솟는다. 무궁한 세월속에 인간은 마치 좁쌀같은
존재이다. 또 한해가 빈 주먹으로 사라진다. 정초의 다짐이 별로
이뤄진게 없다. 맹세도 결국 하나의 구두선과 같은 것일까. 순사고로 물
흐르듯이 살수 있었던 사람은 행복하다. 12월은 시인 윤동주의 달이다.

마지막 이 해를 보내면서 강직하고 신념에 생애을 바친 민족시인을
생각한다는건 정말 뜻깊은 일이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그의 업적과 생애를
되뇌고픈 생각은 없다. 그에 관해선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신문학 이후에 그 많은 시인들을 더듬어 왔건만,스스로의 처절한
죽음으로써 그 자신의 완벽한 시론을 완성시킨 시인은 달리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만28세의 짧은 생애를 오로지 시에 살고 시에 죽었다.
어쩌면 고향 용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을까. 일본 교과서에까지 실린
그의 서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건 시라기보다는 양생훈이요,투철한
잠언이요 인생관이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 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가 좋아한 노래는 현제명의 "희망의 노래",미국민요 "내고향으로 날
보내주""먼 산타루치아""아 목동아"등과 이따금 일본인 기타하라
하쿠슈우(북원백추)작사인 "고노미치"등을 즐겨 불렀다.

마치 그만한 나이에 흔한 러브스토리 하나 뿌리지 않은채
후쿠오카(복강)감옥의 이슬로 스러진 그는 한마디로 서시를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가르쳤다. 대쪽같은 성품이었다. 단 한번도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데는 너그럽게 앞장섰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지리 생리 인심 산수의 네가지 조건을 명당으로 쳤다.

윤동주는 용정 명동촌이 낳은 별이다. 18일이 대선이지만 이만한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양심에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는 지도자상이
그립다. 돈도 명예도 바람처럼 스쳐간다. 오직 확실하게 남은건 인간의
신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