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이라면 영국을 꼽는다. 그만큼 그쪽 소설가가 많다는 얘기다.
애거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등 그 이름을 줄줄이 외우라면 외울만도 하다.
영국의 탐정소설이 많은건 그 음산한 날씨때문이라고도 한다. 햇볕이
드물고 항상 축축한 비나 안개에 싸여있는 날씨,가본 사람이면 더 실감이
날것이다.

그가운데서도 특히 유령이 나올것 같은 옛 성곽들이 많다. 사람들은
옛것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대학이 들어선 옥스퍼드가의 삐걱거리는
식당의 나무계단을 올라가 흑맥주 한잔을 마시고 온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는다. 햅턴 코트같은 고성의 시퍼런 잔디를 밟고 말보로상 근처
가게에서 벌꿀 한상자를 샀던 기억을 오래오래 곱씹는다. 어쩌면 영국
관광객의 대부분은 삭은 역사의 이끼를 매만지거나 그것에 향수를 느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최근 찰스황태자나 다이애나빈이 우리나라를 다녀가 더욱 친근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일 윈저성에서 큰 불이 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윈저성(Windsor Castle)은 런던 서쪽 템즈강변의 성채이다.

11세기에 지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과 왕족들의 주말 별장이기도 하다.
우람한 대원탑을 중심으로 좌우 날개로 퍼졌다. 윈저왕조는 현 왕실명인데
1917년 조지5세가 독일식 하노버가 싫어 이름을 바꾸었다. 그안엔 값진
사료와 방대한 미술품이 꽉 차있어 미처 피해액을 헤아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관광객이 흘린 돈만도 연간 무려 1억3,000만
파운드(약1,500억원)에 이른다니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내부는 완전 폐허가 되었으나 보물을 많이 건져 불행중 다행이랄까.

방수만도 수천개,세계최대의 성이다. 불이 난 20일이 마침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 45주년이었다니 최근의 다이애나빈 스캔들과 겹쳐 뭔가 큰
액땜인지도 모른다. 800년 묵은 성이 불탄 자리에서 절망에 빠진 여왕의
가슴을 읽을만도 하다.

아마 누전이 원인이 아닐까하는 추측들도 있지만,겨울철이 되니 우리들
주변도 단단히 살피는게 옳겠다.

옛 왕궁에선 전기를 안 켜는게 운치가 있었지만,백경시대처럼
고래기름으로 불을 밝힐수도 없는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