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전만 하더라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오늘날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대륙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광활한
대륙에는 지금의 뉴욕 맨해턴 몇 블록에서 모을수 있을 정도의 극소수인
인디언들이 산재해 살았을뿐이다. 그러나 이 처녀지는 발견되자마자
기성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대상이 되어 갔다. 그곳에는
정치적 질곡이나 종교적 핍박도 없었고 권력이나 토지를 차지하려는
다툼에서 생기는 증오와 적의도 없었다. 억눌리고 가난하고 삶에 좌절한
자들에게는 다시 없는 자유로운 천지였다.

".너의 지치고 가난하고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대중을.나에게로 보내라.
집 없고 폭풍우에 시달린 사람들을 나에게로 보내라. 나는 황금의 문 옆에
서서 등불을 들고 기다리리라"
뉴욕항 앞의 베들로섬(지금의 리버티섬)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받침대의 명문(시인 애머 레저러스의 글)이 밝히고 있듯이 이
자유의 땅은 세계인들에게 팔을 활짝 벌렸다. 그것은 미국으로 이민해
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허구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미국사회다.

세계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미국의 꿈"을 안고 몰려들었으나
"황금의 문"을 넘어갈수 있는 공간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소수민족에겐
너무나 협소했다. 그것은 와스프를 중심으로한 백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의 소산이다. 그러한 가운데
소수민족출신 미국인들의 꿈이 펼쳐진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시작한지 1세기여만에 이민1세의
다이아몬드바시장 김창준씨(53.공화당)가 미연방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첫진출을 하게된 것은 "황금의 문"을 통과한 것에 비유될수 있다. 그것도
한국교포들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당선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교포들이
다수인 하와이주에서 일본계의 6선상원의원이 된 다니엘 이노우에나
7선하원의원이된 팻지 민크에 비해 그 값어치가 크다하지 않을수 없다.
엔지니어에서 몸을 일으켜 미국민주주의의 본산인의회에 진출한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긍지"가 더욱 뻗어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