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에 쫓기다보니 의로운 생애의 위인들을 잊고 사는 수가 많다.
어제가 바로 안중근의사의 의거83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람은 흔히 망각의
동물이어서 쓸데없는 것들엔 매여살면서도 막상 잊어선 안될 것들은
흐지부지 잊고 산다. 삼백예순날 기억해야 할 날도 많고 보면 무리도
아닐것 같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의 가슴에 복수의 총탄을 퍼부은 대한남아의 기개가
아니었다면 과연 민족자존의 기상은 어찌됐을까. 죽음을 무릅쓰면 안될
일이 없다. 하지만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기란 쉽지가 않다.
하물며 갓 서른한살의 젊음임에랴. 한일합방의 원흉이고 기세당당했던
이토는 1909년10월26일 만주시찰중 하얼빈 역두에서 여섯방의 육혈포
세례를 받고 쓰러졌다. 안의사는 5개월후 여순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중국에선 손문 다음으로 존경하고 평가한다.

하얼빈시에는 현재 약6만명의 조선족동포가 살고있으며,2개의
안중근연구소가 있다. 중화민국 건국초기에는 소학교 교과서에까지 애국
영웅으로 안의사를 실었으며,오래전부터 "안중근 사료집"을 편찬해 왔다.
오히려 중국에서 "대륙의 은인"으로 평가되고,일본만 하더라도 올해 두권의
전기를 펴내는등 암살자가 아닌 휴머니스트로서의 그를 높이 예찬하고
있다. 특히 고국을 등지고 중국에 살고있는 수많은 조선족들에게는
안중근은 정신적 지주로서 마음가운데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근엔 흑룡강성 도서관에 묻혀있던 안의사의 최초의 전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박은식선생이 주도하여 이미 1913년에
간행된건데,양계초등의 저명인사들이 공동집필한 책임으로 밝혀졌다.
해마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하얼빈시,의사의 마지막 유품인 액자와 유화
초상화,사진과 유시"장부가"등을 소중히 보관중인 당시의 감옥등을
생각할때,우리의 부끄러움은 너무도 크다.

역사의 계승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 민족엔 발전이 없다. 해마다 극히 형식적인 행사만으로
얼버무린다면,당사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 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위태롭다 여겨지면 목숨을 내줄 각오를 하라(견이사의
견위수명)"의 교훈이 오히려 가슴을 저민다. 사이비애국자들에게 주고픈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