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영화 "늑대와 춤을"이 크게 히트했다. 미국을 강타한 뒤에 이땅에
상륙한 것이었다. 인디언의 피가 섞인 캐빈 코스트너가 제작 감독 주연을
도맡아 인디언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을 부쩍 높여 놓았다. 인디언에게
붙잡힌 백인장교가 그들과 동화되어 인간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은
오만한 백인의 우월감을 납작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스토 부인이 쓴
소설 "엉클 톰의 얘기"가 마침내 남북전쟁을 일으키고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가 옛 노예사냥의 현장과 아픔을 재현한 것에는 못미친다
할지라도 "늑대와 춤을"의 인기도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2일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500년 되는 날이었다.
흔히 미국인들은 그를 조지 워싱턴 못지않은 영웅대접을 한다. 그래서
"콜럼버스 데이"를 정하고 요란한 기념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다양한
반론이 고개를 쳐들어 모처럼의 행사에 재가 뿌려지기도 했다. 새로운
역사해석이 등장한 것이다. 한마디로 콜럼버스는 "발견자"가 아니라
"침략자"라는 주장은 주로 원주민 인디언들과 메스티조(인디언과
스페인계의 혼혈),흑인들쪽에서 나왔다. 그 이전에도 남북대륙에는
잉카.마야.아즈텍 도시문명이 난만했으며 독창적인 문화가 꽃피어났다는
얘기였다.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외침과 함께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최근 멕시코의 한 통계를 보면 그가 상륙한후 적어도 2,000만
3,000만명의 원주민을 학살함으로써 "학살자"라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원주민에겐 이날이 "수난의 날"이고,올해를 "원주민의 해"로
선포할만큼 이들의 반발이 심했다.

한사람의 영웅이나 정복자가 존재하기 위해선 숱한 희생자가 뒤따라야
했다. 생각컨대 역사의 뒷전에 파묻혀버린 진실이 그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쩌면 역사 자체가 피비린내나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의 거창한
미국주의가 어쩌면 "발견의 허구"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착잡해지지
않을수 없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전이품이라고도 하지만,사실과
논리자체의 모순은 500년 1,000년이 지나도 바로잡혀야만 한다. 과연
영웅이냐 침략자냐- 지금 한창 콜럼버스의 법정에선 희비가
엇갈리고,곳곳에선 기념행사의 중단소동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