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이라는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상에의
복귀이다. 이제 자기 일터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공동체가 기계처럼 다시 움직이며 돌아가야 한다. 귀성과
귀경이라는 교통전쟁으로 휴식보다는 피로가 더하겠지만 제 할일을 하는
것만이 생의 수단이라는 냉엄한 숙명에 힘을 내 매진해야 한다.
전통사회에선 가족의 일원이 피곤하고 병약할때는 형제가 일을
대신해주지만 산업사회에선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국가간에는 형제가
없다. 우리가 일을 게을리 하면 다른 나라가 대신해줄수 없을뿐 더러
낙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추석연휴를 즐기는 사이에 세계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한일방문을 연기하여 일과 영토분쟁의 조짐을
나타냈다. 곧이어 옐친은 한국만의 연내방문을 표명하여 한.일.소간의
미묘한 외교적 분위기를 조성하고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21세기초의
미국경제를 현재보다 배증시키는 개혁안을 천명했는가 하면
APEC(아태경제회의)에 참여한 미무역대표부 부대표는 한국의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백지화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방콕에선
APEC각료회의가 역내무역자유화의 점진적 추진에 합의했다.

올해 무역흑자가 1천억달러를 넘으리라는 형편속에서도 일본이
경기부양대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은 작년
전체수출중 공업제품의 비중이 77%를 차지하는등 급속한 공업화가 진척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의
현상안주에 도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노동생산성은
일본의 52%에 머물러 있고 근로자들은 노동의욕감퇴와 생산성저하를 스스로
시인하는 형국에 놓여 있다. 정치권의 지리멸열은 대국을 내다볼 여력조차
없다.

중소와의 수교가 우리의 외교입지를 강화해준 것이 사실이다. 여야는
물론 국민들도 이에 의구심을 품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회와 위험은 함께 도사려 있다. 외교하기가 더 힘들어졌고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가 더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극체제때는 미일과 단일축의 우호로써 모든 일이 대충 끝났다. 이제는
미.일.중.소의 틈바구니에서 서로의 이해가 더 복잡하게 얽혀 독자의
운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4강과의 교섭에서 배타적 성격의 거래가
있을수 있고 이것이 자칫하면 다른 나라와 반목의 요소를 내포할수 있다.

종전에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외교는 함포에서 나왔다.
탈냉전시대에는 외교는 경제가 원천이다. 경제력이 부실하면 독자외교에도
위험이 따르고 재앙을 부를수 있는 소지가 있다. 경제가 튼튼해야 외교가
튼튼해질수 있고 열강사이의 흥정에서 벗어날수 있다. 국력이 허약하여
국권이 열강에 의해 농단됐던 구한말의 교훈을 화해시대의 해이로 망각해선
안된다. 경제시대의 외교는 오히려 더 험악해지고 첨예한 대립이
일상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14일로 예정됐던 삼당대표회담은 연기됐다. 오늘 오후엔 정기국회가
소집되나 정상화는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모든 분야중에서 제할일을 가장
못한 곳이 정치분야다. 경제를 이끌거나 도와주기는 커녕 정치논리로
경제를 혼란시키고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의욕을 저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장 상위에 있는 정치가 난장판이면 하류가 온전할리 없다.
선량들이 할일을 팽개치고 놀면서 세비만 챙기는 판에 근로자들에게
근로의욕을 고취할수 있겠는가.

당대표들은 당략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정치정상화에
앞장서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산적한 국정현안을
차근차근 심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은 경제선진화 못지않게
정치선진화를 보고싶어 한다. 경제선진화도 거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막판에 가선 어차피 타결될 일을 속셈이 다른 명분을 가지고 한해를 거의
허송세월할 것인가.

자치단체장선거 관권선거처리도 대선을 공명선거로 치르겠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해결못할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을 우물우물 처리한다면
대선의 공명성을 보장할 입법조치에 무슨 기대를 걸수 있겠는가.
국민보다도 대국을 보는 눈이 좁은 정치의 파당성부터 바로잡혀야 한다.

총선이후 정치불재속에서 모두가 제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름휴가와 추석연휴를 보내다보니 이젠 한해의 4분의1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중에 우리의 경쟁국들은 앞다투어 뛰고 있어 우리를 압박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한가할 겨를이 없다. 급변하는 사방을 둘러보며 정치인
관리 기업인 근로자할것 없이 모두가 제 할일을 해야 한다. 우리 일을
대신해줄 나라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