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수교로 나라 전체가 법석을 떨고 있다. 정치권은 수교의
적시성을 홍보하기에 바쁘고 기업들은 거대한 대륙시장을 가늠해 보면서
컴퓨터를 두드린다. 여하튼 사회 전체가 한바탕 활기를 띠고 돌아가고
있으니 여러가지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조금
가라앉는가 싶던 과소비풍조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관광업계가 바람을 만난듯 시끌하다. 대만으로 가겠다던 관광이 대륙으로
발길을 돌리는가 하면 남보다 하루 빨리 신기한 곳을 보고 와서 자랑을
늘어놓겠다는 충동도 어지간한 모양이다. 과거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풀렸을때 일본으로 몰려가 밥통을 쓸어오듯 청심원이다,녹용이다 오죽 또
요란하겠으며 참깨 땅콩등 농산물과 족발 개고기까지 들여 오느라 얼마나
더 설치겠는가.

오늘의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흔히 3저 호황때 흑자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이 많지만 그 가운데 여행자유화와 수입자유화등의 과소비
부채질은 꼭 못마땅해 하는 대목이다. 관광 유흥 과소비가 사실은 조금씩
다른 개념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한통속이 되어 돌아가는데 문제가 있다.
놀이가 유흥 향락으로 흐르고,관광이 환락을 기웃거리며,소비가 호화사치로
번지게 되면 능력있는 사람은 더욱 기세를 올리고 능력없는 사람은 좌절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래서는 사회가 들떠있어 차분하게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흔들리게 된다.

관광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충전한다는
의미에서 건전하다. 또한 넓은 시야로 격변하는 시대를 여기저기 살핀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정도의 관광까지도 자제해야할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역수지 못지않게 무역외수지가 매년 큰 폭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겐 관광자원도 부족하다.
있는 것은 사람 뿐이라는 조소속에서 우리가 할일은 사람이 하는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 말고는 삼가야 한다. 사람 뿐이기는 비슷한 일본의
생산성 또는 수입유발계수를 따라 잡을 때까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당장
될수 있는 절약부터 해나가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수십년이 걸린다고 한다. 어찌 놀것 다 놀고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겠는가. 거기다가 놀 돈도 없어서 꿔쓰고(적자)있는 형편이 아닌가.

휴일이면 차량홍수가 넘쳐 흐르고 4차선 6차선이 비좁은 짜증을 낸다고 또
수조원을 들여 길을 뚫고 넓힌다면 기초과학의 확충과 총체적으로
독자상품의 개발이나 우등품질의 확보를 위한 투자재원이 넉넉해질수 없다.
재원뿐 아니라 모든 생산력의 원천인 창의력은 음미와 여유와 침잠의 바탕
위에서 발휘되는 것이므로 부박과 조급과 대충이 풍미하는 분위기는
가셔내야 한다. 일본의 차문화가 일본산업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하지 않는가.

와견명산이라는 말처럼 구경거리를 꼭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산과 들,내와 바다에서도 소창이 가능하며 또한 안방의 오디오와
비디오에서도 세계를 조망하며 명소를 더듬을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나가 색다른 풍경을즐기지 않더라도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물상의 모습과 그 변해 오고가는 상상에서 새로운 느낌과
얘깃거리는 얼마든지 골라 잡을수 있다. 꼭 부킹이 어려운 골프를
쳐야하고 그것도 미국 페블비치의 몇번 홀에서 슬라이스가 났다는등 그런
얘기만이 자랑스럽고 신나는게 아니다.

얼마전 출장길 기내에서 어느 인솔책임자인 듯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남녀팀을 이끌고 돌아가는듯한 이사람은 옆사람들의 존재에는 아랑곳 없이
남녀팀장을 번갈아 불러 세우고 자기는 윗사람 선물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자기에 대한 선물은 생각도 안하면서 나눠준 돈이 적다고만
투덜대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안데리고
나온다면서.

우리는 어찌보면 전시여행에 기갈이 들린 사람같다. 여북하면 외국여행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에는 제주도라도 갔다오자는 마누라의 푸념이
유행이었겠는가. 요즈음도 하던 일을 팽개치고 관광길에 오르는
농촌풍경이 있으며 고수동굴을 두번이나 다녀왔다는 시골 아낙네도 있다.
서구 직장인들이 여행을 위하여 일하는것 같다는 다 갖추어진 얘기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한참 안 맞을 것이다. 절약은 오랫동안 우리의
미덕이었고 지금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