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기분좋은 날"이었다. 이만저만 즐겁지 않은 하루였다.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린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치인 경제인 근로자 주부
학생할것없이 모두가 하나되어 강원도 삼척출신의 건각 황영조선수의
제25회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제패를 온종일 화제에 올려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TV실황중계를 지켜본 경우는 말할것없고 나중에
반복된 녹화화면을 본 사람들에게도 황선수가 역주하는 모습,특히
몬주익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에 답하면서 여유만만하게
골인하는 장면은 실로 감격적이었다.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봐도 좀처럼
솟구치는 감동과 흥분을 누르기 어렵다.

마침 이날은 역사의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하게도 현지시간으로 56년전
손기정씨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날과 똑같은 8월9일이었다.
당시 손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태극기와
더불어 우승했고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선생이 살던 마요르카섬이 저멀리
바라다 보이는 시상대위에서 애국가소리를 들으면서 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일본선수를 뒤로 따돌리고.

아무튼 이제 바르셀로나의 성화는 꺼졌다. 지난 16일간 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어지러운 정치 경제 사회현실을 조금은 잊게
만들었던 올림픽경기는 막을 내렸다. 가급적 빨리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우리자신을 돌아봐야 할 순간이다. 내일 개선하리라는
선수단에게는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야한다. 또 이번 올림픽의 성과를
평가하고 다시 4년후를 준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번대회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 사실 혹은 새삼스럽게
얻을수 있었던 값진 교훈들을 곱씹어보는 일이다. 무엇이 세계마라톤을
제패하고 종합성적 7위에 오를수 있게 만들었는지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우선 꼽아야할 것은 끈기다. 마라톤이 그랬고
다른 모든 경기가 그랬다. 우승뒤엔 강인한 체력과 더불어 강한 정신력,즉
심신양면의 끈기가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뭔가 기어이
해내고야말겠다는 집념과 승부근성이 도사리고 있다. 마라톤이야말로
끈기의 상징이다.

마지막날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마라톤우승에 모두가 특히 열광한 것은
의외성때문이었다. 처음엔 별 기대를 걸지않았던 탓에 더욱 환호했다.
그러나 결과론이긴 해도 그와같은 승리이면에는 오랜세월의 남다른 각고가
숨어있다.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훈련,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결정이다.
타고난 재능은 단지 한가지 필요조건일 뿐이고 우연이나 요행은 사족이다.
선수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각고가 바로 승리의 충분조건이다.

영광의 금메달과 그밖에 메달리스트들의 뒤안길엔 특히 하나같이
어머니들의 숨은 공로가 자리하고 있다. 홀어머니만 있는 불우한
환경,혹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정성속에 뜻을 펼수 있었다. 역시 "헝그리"정신 바로 그것이
선수들로 하여금 오늘의 승리를 쟁취하게 만든 또 다른 무형의
밑거름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깨달음이랄까 교훈은 결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정치와
경제,그리고 국민생활전반에 해당된다. 특히 우리는 스포츠경기의
승리뒤엔 으레 오랜기간동안 엄청난 고통과 인내,각고의 노력이 숨어있는
사실을 거울삼아 정치건 경제건 매사를 조급하게 이루려들지 말아야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된게 아니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도 정작 우리의
행동은 언제나 성급하고,늘 무엇엔가 쫓기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매사를 서두르고 또 근시안적이다. 뭔가 돋보이는 일을 자기손과 이름으로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까 내용은 뒷전이고 겉모양만 번듯하면 그만이다.

이런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민주정치는 어렵고 경제발전도 기대할수
없다. 안정된 사회,모든 국민이 풍요롭고 안락하게 살수있는
민주복지국가건설은 더더욱 힘들다. 조급함속에서 어떻게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며 먼 앞날을 겨냥한 기술개발과 자본.인력투자가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사회가 질서있고 안정되길 바라겠는가.

이번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를 진정 값지게 하려면 올림픽에서 얻은 교훈을
스포츠뿐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값지게 활용해야한다. 바야흐로
더위가 서서히 꺾이고 여름휴가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올림픽의 열기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아 모두가 다시 열심히 일해야한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 제할일을하고 경제가 돌고 증시가 활력을 되찾게 해야한다.

88올림픽이후 우리는 선진국이 다 된듯한 성급한 착각으로 꾸준한
성취보다는 능력이상의 과시에 휩쓸렸었다. 그것은 올림픽 금메달의
참뜻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