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일본의 "우국"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는 그의 추종자와
함께 자윙대기지에 난입하여 8백여 자위대원을 앞에 놓고 발코니에서
사자후를 토한후 "천황폐하만세"룰 부르고 할복했다. 좌익들의
반안보투쟁에 치안출동을 하지 못한 "자위대의 비극"을 죽음으로 천명한
것이다. 미시마나름의 논리는 1경찰력에 의한 좌익세력의 진압
2자위대치안출동기회의 소멸 3개헌불능 4자위대의 비극이었다.

미시마의 언행록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일본은 사라지고,그 대신에
무기적이고,속이 텅 비고,중립적이고,중간색이며,부유하고 빈틈없는 어떤
경제적 대국이 극동의 일각에 남아있게 될것이다. 그래도 좋다는
사람들과는 말도 하지 않으련다"
미시마의 죽음은 지금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것 같다. 치안출동도 하지
못한 자위대가 세계출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PKO(평화유지활동)의
입법단계가 거의 끝난 때문이다. 일본은 사라지고 혼이 없는 경제대국만이
극동의 일각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일본은 그 고유한 색깔을 더 짙게
하면서 세계속의 일본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움직이면 세계가
움직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일본경제의 대외창구라고 할수 있는 통산성은 공교롭게도
PKO법안처리일정중에 "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을 구체화시켰다.
미.EC.한국등에 역습을 가한 새로운 사태다. 지금까지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 때문에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불공정 무역관행과 시장폐쇄성을
지탄받아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일본 통산성은 "주요 무역상대국의
불공정무역관행 보고서"를 내놓아 미.EC.한국등의 불공정무역을 거꾸로
공격하고 나온 것이다.

일본 통산성은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하여는 수입선다변화품목제도등
6개항의 불공정무역관행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지적에는 부분적으로
타당한 구석이 없는건 아니지만 자신들의 주체할수 없는 무역흑자와 교묘한
수입규제장치가 엄연히 존재하는 속에서 반격에 나선점이 중요하다.
PKO법안과 관련하여 이제는 경제력에 맞게 할말은 하고 세계무대에서
정치적 역할도 수행하겠다는 속셈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자위대의 첫
파병선이 캄보디아가 될것이며 일본이 캄보디아재건위의 의장국이 되리라는
보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의 세계적 역할증대에 대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과거에 그들에게
가장 혹독한 고통을 당했던 한국으로선 심정적으로 착잡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서적 반응보다는 냉정한 평가가 이번엔 특히 바람직하다. 한
나라가 자기들의 능력에 맞게 세계적 역할을 하려는 것은 나무랄수 없는
일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등 모든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만 정치적으로 주저앉아있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일본의 예외적 사항은 그들은 독일처럼 깨끗한 과거청산을 하고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나라 군대가 총을 들고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과거
고통을 당했던 나라들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일본은
PKO활동과 더불어 과거청산에도 용감해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비전투적 평화유지활동에만 국한하는 것이 소망스러운 일이다.

한가지 우리가 경계해야할 점은 일본의 과거 청산문제와 한일간의
협력강화필요성이 구분되지 않고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요즘
과거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이,일본에서는 반한감정이
중폭되고 있다. 이에 영향받아 일본기업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기술협력에도 간격이 벌어지는등 우려할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협력하여 EC통합의 주역이 되고있듯이 한일의
아시아시대에서의 공동역할은 두나라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두나라중 한나라가 신도시로 이사가듯 땅을 옮길수 없는 바에야 한일은
숙명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단연코 사이좋게 번영하는게 좋다.
그러려면 국부수준이 비슷해야 하며 협력은 불가피한 것이다. 일본이
유색인종으로는 최초로 선진국이 된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현실을
누구든 직시해야 하며 후련한 정서적 반응보다는 국익이 어디에 있는가를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일본은 이제 세계출동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은 무엇을 하고있는가.
우리의 세계적 위상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밀리고 있다.
우리가 싸울 무대는 지구촌인데 우물안에서 우리끼리 치고받고 있다.
남북한을 둘러싸고 열강이 각축하는 구한말같은 사태가 와도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한 일은 싫든 좋든 "동아시아호"의 승무원임을 기피할수 없다.
PKO에서 찾아야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