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6월에 일본계이민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페루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우리의 부러움을산 일이 있다. 일본계 페루인들이
현지사회에 철저히 동화되고 유사시에는 "하나"로 단합함으로써 "100%
페루인"을 내세운 후지모리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후지모리의
당선배경에는 경제대국 일본의 경제지원에 대한 페루인들의 기대심리도
한몫거들었다는 후문이다. 일본의 막강한 국력이 교민사회의 위상을
높이면서 후지모리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일본인들도 우리처럼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하지만 100여년의
이민체험을 통해 다른민족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했다.
LA사태는 해외거주 한인들에게 현지인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고
"한인은 하나여야한다"라는 점을 깨우치고있다.
폭동의 와중에서 숱한 교민들이 길게는 수십년간 일궈온 "공든탑"을
하루사이에 모두 잃었다. 분탕질을 당한 것에 좌절만 해선 안된다.
이사건에서 교민들은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한다.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닦는 일에만 자족할게아니라 집단화된 세력을 배경으로 정치 사회적
파워를 길러야만 미국땅에서 번성할수 있다. 이점에서 교민사회의 단결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최선의 치유책이다. 지난2일 LA한인10만명의
평화대행진당시 "뭉치면 산다"라는 피켓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지금 LA에서 들리는 교민사회의 분열소식은 그래서 더욱 가슴아프다.
폭동피해보상문제를 놓고 교민단체간에 주도권다툼이 일고있다니 안타깝다.
미증유의 재난을 당하고도 각교민단체간에 서로 반목 대립한다는 사실은
교민들의 앞날이 계속 험난하리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교민사회가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미국의 국내문제보다 모국문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도 배격돼야 마땅하다. 언어장벽
문화장벽때문에 미국사회에의 적응이 어렵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모국의
정치상황에 휘말려 교민사회가 분열될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교민사회는
80년 "서울의 봄",87년대선때 김씨들의 대결로 본국못지않게 지역감정이
심화됐다. 일부 교포사회에는 지금도 본국정치인의 지역성등에 따라
교민들이 분열돼 있다는 뒷얘기가 들린다.
우리정치권은 흑인폭동이 미처 진정되기도전에 경쟁적으로 대표단을
사건현지로 급파시켰다. 정치인들이 순전히 동포애차원에서 피해교민을
돕겠다는데야 이를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정치권이
교민지원이라는 순수한 의도외에 재미교포관련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서
LA사태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이 많다는데 문제가있다. 교민에
대한 "애정"은 평가받아야겠지만 행여나 정치권의 인기관리때문에
교민피해복구에 지장을 줄까 염려된다.
정치인중에는 차제에 교민청을 신설하고 엄청난 규모의 지원기금을
마련하자는 이들도 있다. LA교민이 우리와 "한핏줄"임에는 틀림없지만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새로운 관료기구가 필요한지는 현재의
우리경제여건상 의문시된다. 일본의 경우 해외교포를 관장하는 부서는
외무성의 방인보호과가 고작이다. 정치권이 자신의 인기관리를 위해
국민적인 관심사가 발생할때마다 "국가예산"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폭동사태직후 우리 정부가 미국정부보다 앞서 "실태조사단"을 파견한 일은
모국정부와 교포사회사이에 정서적 일체감을 조성했을지는 몰라도
국제사회에서 "성숙된 외교"로 평가받긴 힘들 것같다.
정치권은 이번사건에서 일반국민보다 더 울화가 치밀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피해교민을 돕기위해 정치권이 직접나서는 것은 결과적으로
교민사회에 이로울게 없다. 차라리 경제단체 종교단체같은 민간단체가
발벗고나서 돕는게 낫다. 불필요한 외교잡음도 막고 교포와 모국인사이에
동포애의 홍수도 경험하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LA교포들 편에 서려면 위문나들이나 선심공약보다는 국력신장을
통해 교민의 위상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폭동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경제력확대에 국민적 힘을
결집시키는 슬기를 보여줘야할때이다.
그래야만 우리도 멀지않아 후지모리같은 한국계 외국대통령의 등단소식도
듣게될게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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