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정규재특파원]지금 모스크바에서는 얼마전 엑스포센터에서
개최된 일본상품전시회가 큰 화제거리로 올라있다. 단일 규모로는
모스크바 사상 최대전시회였던만큼 이곳 경제계의 관심은 지대했다.
총면적 1만5천 의 엑스포센터부지에 일본의 2백20여개 기업과 50여개단체가
무려 2만여점의 상품을 전시하는 명실상부한 일본상품 총람전이었다.
가전제품을 비롯 공작기계 컴퓨터 자동차중 적어도 10%는 신제품이어서
모스크비치는 물론이고 모스크바주재 외국인들에게도 구경거리가
아닐수없었다.
"소련시장에서 찾아 먹을게 없다"는 일종의 흑색선전을 몇년째
되풀이해오고 있는 그들이 왜 이런 "환상적인"전시회를 벌이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없다. 우리나라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같은 성격의
일본 JETRO가 이번 전시회를 주관했다. 전시회를 지휘하고있는 가스요시
가가미씨를 만났다.
-놀랄만한 전시회다. 전시회개최 목적은.
"특별한 목적은 없다. 이미 2년전에 계획된 것이다"
-러시아경제가 무역활동을 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운게 현실인데.
"물론 지금은 어렵다. 러시아경제가 궤도에 오르는데 5 6년 걸릴것이다.
그러나 무역활동은 앞날을 보고 하는것이다"
-JETRO는 왜 아직 모스크바사무소가 없는가.
"알면서 왜 묻나. 우리나라 각부처들의 의견차이가 있다. 통산성은
사무소설치를 희망하지만 외무성이 반대한다.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가
있다"
가스요시씨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자동차전시장코너에서 멀리서도 눈에
띌만큼 열심인 세일즈맨이 있어 그를 한쪽으로 불렀다.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유창한 러시아말로 자사신제품을 설명하는중에 말을 끊기가 미안할
정도다.
-러시아말을 어디서 배웠나.
"15년전에 모스크바에서 1년간 연수했다. 이후 줄곧 러시아어를 연마하고
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15년전이라니.
"고등학교때 러시아어 연수를 왔었다"
15년전부터 러시아어연수팀을 모스크바에 보내온 일본과 아직도 JETRO의
사무소를 허가해주지 않는 일본정부의 이중전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이같은 이중전략은 일본의 러시아비즈니스 현장도처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일본종합상사들이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설치한것은 지난
60년대초. 80년대 중반까지 썰물기가 있었다가 우리나라가 진출하고
소련의 대외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다시 밀물기를 맞고있다.
최근 수년동안 극동지역진출이 활기를 띠고있는 과정에서도 이미
시추해놓은 사할린유전에서 조차 온갖 핑계로 기름을 빼올리지 않고있는
일본이다.
일본의 대소련시장공략은 철저히 일본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일본의 대소무역통계에서도 이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일본이 소련과 무역을 재개한것은 57년으로 60년엔 무역액이
1억달러,70년엔 10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80년대들어 최근까지 일본의
대소무역액은 50억달러에서 60억달러수준을 넘어서지 않고있다.
가스요시씨의 증언에서도 짐작되지만 일본의 대소 비즈니스는 여러가지
정치적 변수가 있고 이것이 보이지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원조과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총액 2백40억달러의 대CIS(독립국가연합)원조를 최근 발표하자 바로
그다음날 일본측은 금시초문이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초호화박람회와 이같은 냉소적인 태도사이에 점점으로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쿠릴열도(북방4개도서)문제다. 날마다 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루는 모스크바언론에 보도된 최근의 한 여론조사가 관심을
모으고있다.
일본경제신문이 실시한 이 여론조사의 질문항목중 70%는 당신은
쿠릴열도에 대해 아는가. 쿠릴열도 분쟁의 바람직한 해결방안은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열도를 잠정적으로 공동관리하면 지역경제개발에 도움이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등의 지극히 정치적이고도
의도적인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시선을 끌고있다.
일본으로서는 대단히 실망스런 결과가 나왔지만 관.상.언론이 하나의
비밀지령에 의해 움직이고 지금 그 지령이 쿠릴열도문제에 귀착돼있는
것같아 전율마저 느끼게 되는것이다.
최선을 다해 유혹하고 준비를 갖추고 때를 기다리는 일본의 상술을 이
초호화전시회가 웅변하고 있는것같아 상대적으로 무절제하게 덤비고
과당경쟁으로 점철돼있는 한국기업및 정부의 상술이 대조를 이루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