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경제는 흡사 대오를 벗어난 기러기를 연상시킨다.
기러기들은 언제나 거꾸로된 브이(V)자 모양으로 오와 열을 정연하게 맞춰
창공을 시원스럽게 날아가는걸 볼수 있다. 세계경제도 자세히 관찰하면
이와 유사하다. 선두의 선진국을 따라 일단의 중진국과 후진국들이 일정한
간격을 감수하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범위를 지역으로 좁혀보면 그런 현상이 좀더 뚜렷해진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선진국이며 최선두에서 아시아경제를 끌어가고 있다.
한국경제는 누가 뭐래도 지난30년간 일본경제를 개발과 선진화의 모델로
삼아 정신없이 달려왔다. 공업화와 수출전략이 그랬고 자본과 기술,초기의
수출시장개척등에 이르기까지 일본으로부터 배우고 얻은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뿐이 아니라 홍콩 대만 싱가포르등 세칭 아시아의 작은 용들이 모두
그랬다. 여기에 지금은 또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등 후발국들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외기러기신세가 된 꼴이다. 세계경제차원에서나
아시아에서 모두 그렇게 되어있다. 대열에서 스스로 벗어난게 아니라
기력이 쇠잔하고 힘에 부쳐 낙오되어 버린 외기러기 신세다.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선진국할것없이 더이상 한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며 한국을 투자,특히 제조업투자의 적지로 여기지
않는다. 경제와 산업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해서 농산물을 비롯한 각종
상품시장과 자본시장 서비스시장의 개방만을 밀어붙이기에 여념이없다.
그런가하면 아시아,특히 동남아후발국들이 일본의 새로운 파트너,생산의
전진기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어느덧 도처에서 한국을 밀어내는 위협적인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멕시코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등
중남미국가들도 오랜 방황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고,구소련을 포함한
중.동부 유럽국가들은 EC와 G7의 도움을 받아 시장경제에 뛰어들 채비에
분주하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전세계적으로 협공을 당하고있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해서다. 누르고 제칠수 있는 상대로 얕잡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상품은 지금 세계도처에서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가격에서 밀리고
품질에서 밀리고있다. 그결과 미.일.EC등 전통적 주력시장에서의
무역적자가 갈수록 늘고있다. 그런 한편으로 동남아 후발국과 경쟁국들의
값싼 수입품이 국내시장을 무서운 기세로 삼켜가고 있다. 올1.4분기
무역수지가 약간 개선되는 기미를 보였지만 일시적 현상일뿐 구조적으로는
전혀 달라진게 없다.
한국경제가 이런 꼴이 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먼저 급속하게 변하고 저마다 전진에 여념이 없는 세계경제질서에서 점점
멀어지고 고립되어가는 자신의 참담한 경제현실을 똑바로 알아야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한국경제의 부끄러운 위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 일어설길을 찾아야한다.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한다. 더이상 일본을 따를 필요는
없다. 한국경제의 진로는 이제 우리 스스로가 정하고 개척해야한다.
그것은 새로운 의미의 자주와 자립이다. 배척이나 고립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일본을 포함해서 어느 상대건 원망할 필요가 없고 기술을 달라거니
혹은 상품을 더 사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다. 경제란 개인 기업 국가간
할것없이 어디까지나 거래이며 거래는 바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자본과 공장이 동남아로 가는건 그들의 저임과
풍부한 인력이 일본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품이건 기술이건 국제시장에서 교환(거래)할수 있는 것을 스스로
개발해서 갖고 있어야한다. 경쟁력이란 다름아니고 그런걸 많이 확보하고
동시에 또 계속해서 개발할수 있는 힘이다. 우리에겐 지금 그게 없다.
고임이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고 여기에 높은 금융비용과 극도로
저하된 기업의욕 근로의욕 낙후된 기술수준이 거래할 건덕지 자체를 갈수록
빈약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가 그꼴인데도 집권당은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대권전초전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야당도 그렇기는 매한가지이고 이런 가운데
관리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이른바 "경선"정국으로 경제가 곪는 줄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12월까지 이러면 큰 일이다. 빨리 깨어나야 한다.
정신을 차려 경제를 살려야한다. 연약해진 기초를 다시 다지고 체질을
강화해서 주체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아시아와 세계경제질서에서 응분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해야한다. 정치고 국제외교고 경제가 강하여 경제의
자결력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