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비상이 걸리고 무역적자폭이 늘어나는등 현재의 경제상황은
우려할 단계를 넘었다. 노태우대통령은 5일 정부의 현경제상황인식과
제재방안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경제관련부처의 경제실책에 책임을
묻겠다고 언급했다.
노대통령은 "무역수지만 하더라도 연초에는 30억달러 적자전망이라고
보고하고 이제와서 87억달러적자라고 하는데 이는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경제는 숫자놀이가 아니다. 경제운용결과는 거의 대부분 통계로
나타나지만 그런 통계를 보고 경제상황을 걱정할 때에는 이미 상황이
악화된 후이다. 따라서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느끼고 파악하는 눈과 귀와
이를 통한 판단력이 경제정책당국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정책당국자가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할때 질책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전망이란 결코 쉬운 일일수 없다. 그리고 경제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환경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당초 전망한 것과 실적이 다를 수 있고
또 전망치와 실적치가 다르다는 것 자체가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자가 다르다는 것도 정도의 문제다. 정부는 "91년
경제운용방향"(90년12월25일발표)에서 올 경상수지적자 30억달러
무역적자(통관기준)70억달러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걸프전 등으로
대내외환경이 바뀌었고 또한 상반기 경제운용실적을 감안,불과 2개월여전에
올해 경제운용계획을 수정보완한 "91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6월25일
발표)에서도 올 경상수지적자를 30억달러,무역적자를 당초보다 축소한
60억달러로 전망했다. 그리고 8월말 경상수지적자규모를 55억달러규모로
묶기로 다시 수정했다.
그러나 경상수지적자는 7월말현재 70억달러,무역적자(통관기준)는
8월말까지 87억7,800만달러에 달함으로써 전망치와 실적치의 괴리는
납득할수 없을 만큼 크다. 노대통령이 인용한 통계숫자는
무역수지전망치가 아닌 경상수지전망치와 8월까지의 무역수지실적치를
비교한 것이지만,정부당국이 경제의 흐름을 잘못 파악한 점을 우리는
너무나 뚜렷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상반기에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하반기에는 흑자로
반전,연간으로는 경제운용방향에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고
우겼고 하반기들어서도 흑자로의 반전이 여의치 않자 10월이후 또는
연말께부터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낙관론을 여전히 펼치고 있다.
우리가 물가나 국제수지동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상승률이나
적자규모가 크다는데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요인을 바로 잡지않고 미봉책만 동원해서
숫자놀이식 경제운용을 하려는 데에 있다.
무역적자가 8월22일 현재 97억달러를 기록하자 밀어내기식 수출에다
실제로 수출이 안된 선박과 자동차등을 수출한것으로 꾸미고 수입을
지연시키는등 인위적인 편법을 써서 8월말까지 87억7,800만달러로
적자규모를 줄였다. 이런것이 과연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법인가.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경제운용은 결코 숫자놀이가 아니다.
8월까지의 소비자물가는 8. 3%,도매물가는 2. 1%뛰었다. 그것도
8월중에 크게 뛰었다. 여기다가 무역적자 경상수지적자규모가 커진것이다.
이에대해 경제정책당국자가 대통령에게 계절적요인 일시적현상등으로
물가상승과 무역적자요인을 분석보고했다면 그 책임이 가벼울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경제현상을 바로잡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대통령의
질책은 때늦은 것이지만 이런 질책에 경제정책당국이 또다시 허둥대는
대책을 내밀면 경제는 걷잡을수 없는 방향으로 표류할수 밖에 없다.
밀어내기 수출에다 필요한 수입을 지연시키는등의 고식적 방법만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장단기대책을 세워야한다. 물가 국제수지를 따질때는 이런
논리를 펴고 예산을 짜고 또 어떤사업을 벌일때는 저런 논리를 펴서는
문제를 풀어갈 수가 없다.
예컨대 수입자유화의 불가피성을 누가 모를까만 이에 대한
철저한대비책하나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국민들의
과소비만 탓할게 아니라 정부 스스로 "내탓이오"를 외쳐야 한다. 일부
개인이 방만한 것으로 나라는 망하지 않지만 정부가 방만하면 나라는
망한다.
기술개발,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무역적자라면 참을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게 아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낙관으로
일관하다가 눈덩이적자가 고착화징후를 나타내자 조급하게 서두르는 대책은
오히려 위험하다. 장단기대책을 세우고 국민적 지지를 얻지 않는한
정책당국자의 문책으로만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