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문학을 개척한 문호이자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말기의 친일
활동으로 건국후 반민특위에 서야 했던 비극의 주인공 춘원 이광수는 6.25
전쟁초기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돼 강계로 끌려 가던중 동상에 걸려
평안북도 만포 인민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50년 12월 초순 58세로
사망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같은 사실은 당시 북한에서 작가활동을 하면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문화성부상 등을 지내다 그후 숙청돼 소련으로 망명한
정상진씨(73.알마아타거주.재소 고려인신문 고려일보주필)와 역시
북한에서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과 외무성부상등을 지내다 소련으로
망명한 박길용박사(71.소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등의
최근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는 것이다.
춘원이 50년말 사망할 때 북한 문화성부상으로 재직했던 정상진씨에
따르면 북한은 6.25 전쟁중인 50년 7월중순께 서울에서 춘원을 평양으로
끌고 가 "일제의 앞잡이 문인,민족반역의 반동분자"라며 함께 납북해 간
예술인.지식인등과 함께 감방에 수용했으며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50년 10월중순께 평양에서 후퇴할때 조만식선생 등 다른 인사들을
처형하면서도 춘원등 일부인사는 향후의 이용가치를 고려해 평북(현재는
자강도) 강계를 향해 도보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끌려가던 춘원은 강계에서 30여 쯤 떨어진 험악한 산악지대인 속칭
"개고개" 고지에 이르렀을때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눈보라속에서 원체 병약했던데다 다리등에 심한 동상이 걸려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고통을 못이긴 춘원은 일본유학.상해독립운동시절 함께 하숙을 했고
서울에서도 문학활동을 함께 해온 당시 북한 부수상겸 노동당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임거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68년 3월 75세때 노환으로
사망)에게 어떤 경로로 보냈는지는 모르나 "춥고 배고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두다리까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올라 더이상 걸어갈
수가 없소. 마지막 부탁이오. 죽어가는 친구하나를 구원해 주시요"라는
서신을 인편을 통해 전달했다는 것.
당시 고위지도자들과 함께 후퇴해 강계에 있던 홍명희는 춘원과의 오랜
우정을 되새기며 고민끝에 그를 구하기로 결심,김일성수상의 재가를 얻어내
즉시 부관과 지프를 "개고개"고지로 보내 사경을 헤매던 춘원을 강계로
데리고 가 자신의 임시숙소에서 며칠간 자가요법 등으로 동상등을
치료하며 보호했으나 끝내 운명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씨의 증언에 덧붙여 당시 조-소 문화협회 부위원장이었던
박박사에 따르면 홍명희는 춘원의 동상이 점점 악화되자 강계에서 15km
떨어진 만포의 북한 인민군병원으로 후송,치료를 계속했으나 50년 12월
초순께 동상과 지병인 폐결핵등이 악화돼 병원에서 숨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