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arte 더 클래식 2023’ 시리즈 5 공연을 끝낸 연주자들이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arte 더 클래식 2023’ 시리즈 5 공연을 끝낸 연주자들이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삶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의 그 경계까지 생생하게 표현된 공연이었다.

영화 한 편 길이에 달하는 이 초대형 교향곡이 모두 끝나고, 곳곳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80분 동안 인생의 모든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객석의 열렬한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임헌정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상을 넘어, 체험의 순간을 제공했다.

첼로와 베이스의 트레몰로로 불길한 분위기를 예고하면서 1악장이 시작됐다. 이내 죽음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모티브들이 선명하게 들리며 교향곡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만큼 순간순간의 표현이 명확했다.

임헌정 지휘자의 노련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임 지휘자는 부천필하모닉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며 ‘말러 붐’을 일으킨 지휘자다. 말러의 언어는 임 지휘자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었다.

작품 내내 여러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는 연출도 자연스러운 건 당연했다. 잉글리시 호른이 전원풍의 노래를 연주할 때나, 아니면 첼로와 베이스가 순간적으로 오프닝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암시할 때조차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2악장의 춤곡에서도 독특한 렌틀러 리듬보다도, 섬세하게 작품의 다이내믹을 조절하며 자연스럽게 작품의 분위기를 바꾸는 지휘자의 연출이 먼저 보였다. 말러는 2악장을 ‘영웅의 일생을 한순간 비추었던 햇빛’이라고 표현했는데, 눈앞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그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춤곡을 기초로 하며 어두운 분위기와 밝은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또 3악장에선 작품의 주제가 가진 리듬을 강조해 역동적인 에너지가 끊이지 않고 계속 흐르게 만들었다. 이 주제는 여러 악기를 옮겨 다니면서 생명력을 유지했는데, 그런 덕에 3악장이 하나의 긴 노래로도 느껴졌다. 여러 감정을 오가는 순간순간이 거침없었다. 냉소적이고 신랄하면서도 신성한 3악장 특유의 분위기가 아주 잘 묘사될 수 있었다. 역시 말러의 음악을 수도 없이 지휘해 온 지휘자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아쉬운 대목은 오케스트라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심상을 전달할 때였다. 말러 교향곡 2번에선 죽음의 세계와 인간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잘 묘사돼 있다. 그 순간마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견디지 못했다. 다양한 악기가 동시에 여러 캐릭터와 소리를 묘사할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버거워 보였다.

사실 무질서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선 가장 질서 있는 연주가 이뤄져야 한다. 소리들이 정교하게 자신의 위치에 있을 때만이 완벽하게 무질서한 음악이 연출된다. 그런 점에서 소리가 분리되지 않고, 거대한 덩어리처럼 객석으로 전달될 때는 조금 아쉬웠다. 입체적으로 들려야 할 부분들이 다소 무디게 들렸다. 비극적인 정서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1악장의 순간들과 또 반대로 크나큰 환희를 느끼는 5악장의 순간들이 그랬다.

그럼에도 말러의 실황이 주는 힘은 대단했다. 피날레에서 주는 감동은 압도적인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서 기인하는데,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 지휘자는 더욱 드라마틱한 피날레를 만들기 위해 템포를 조절하며, 이 음악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카타르시스를 끌어냈다. 역시 이 작품에 대한 풍부한 경험 덕분이었다. 또 합창단을 포함한 무대 위 모든 예술가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분투하며 곡을 완성시켰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80분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임 지휘자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혁신적인 접근이나, 모험을 감행하며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진 않았다. 흘러가는 거대한 음악을 통제하면서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감정들을 드러내는 데 대부분의 역량을 할애했다. 그렇기 때문에 80분 동안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무대 위에서 구현될 수 있었다. 말러가 말한 것처럼 교향곡은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