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책’으로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을 꼽는 것은 반칙
인정한다. 한국 문학 편집자가 ‘탐나는 책’으로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을 꼽는 것은 반칙이다. 누가 탐을 내지 않을 것인가?

나는 작가님이 만일 내게 원고를 주시겠다고 하면 자전거를 타고 작가님 동네까지 갈 자신도 있다. (참고로 나는 자전거 타기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그래도 네이버 지도 기준으로 서른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적어도 전기자전거를 탈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면에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위저드 베이커리> 키드 중 한 명이고(라고 말하기엔 나이가 좀 들어서 보긴 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이 흥행작을 읽고 여전히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구병모 작가는 아주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쓴다.

그런데 나도, 그리고 다른 많은 독자도 여전히 구병모의 소설을 따라 읽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 이제는 아마 매혹되는 이유도 읽는 사람마다 각자 달라진 건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그럴 만큼 구병모는 같은 시기에도 변화의 폭이 크고 끊임없이 때때로 자신을 갱신하는 넓은 궤적을 그려왔으며, 그럴 만큼 자신이 잡은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놀라운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병모 작가의 미니픽션이 모인 <로렘 입숨의 책>을 열기 전에는 이 책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조금 의심했음을 고백한다. 만연체의 문장들과 분투해가며 이야기의 정체를 탐색해가는 재미가 매력이라 생각했던 작가가 짧은 길이의 소설을 썼다면 그 즐거움이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반전은, 그렇게 미심쩍은 마음으로 책을 펴 들었다가 내가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치고야 말았다는 것이다(퇴근도 아니고 출근 중에!!).

구병모 작가의 짧은 소설들은 마치 총탄 같아서 작고 단단한 이야기의 탄알을 높은 밀도의 압력으로 읽는 이의 생각을 한순간에 날려버린다.

그의 팬으로서, 그리고 편집자로서, 이 책은 내게 마인드 블로잉 피스톨이었다고 말해보고 싶다.
출처: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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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신화와 신학, 역사, 철학이 현실보다 더 리얼한 환상 속에 녹아들고, 익숙한 주제들을 여러 번 꼬아서 만만하지 않은 질문들로 독자에게 되돌려 보낸다.

인간의 본질, 경박한 세태, 글쓰기와 언어, 예술, 고전과 성서 등을 경유하는 열세 편의 소설. 짧은 분량 속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어려운 내용을 입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심지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내려놓을 수도 없게 만든다고?

이 책은 미니픽션, 초단편, 혹은 엽편이나 콩트라고 불리는 40~50매 분량의 소설이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계기를 내게 열어주었다.

<로렘 입숨의 책> 읽기는 구병모의 오랜 팬들에게 또다시 다가온 새로운 도전의 독서이고, 언제나처럼 선물로 안겨진 큰 기쁨이다.

최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