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 출간…"감사와 도전의 이야기 담아"
피아니스트 백혜선 "50년 연주 인생…매일 좌절하고 도전했죠"
"최근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은 저 같은 '나이 든' 연주자에게도 큰 자극을 주죠. 기능적으로는 제가 부족할 수 있어도 가슴을 울리는 연주, 오래 남는 연주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합니다.

"
중견 피아니스트이자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인 백혜선(58)이 그간의 연주 여정을 돌아보는 책을 펴냈다.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출간한 백혜선은 30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저에게 정성을 쏟아준 인연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도전 정신,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50년 연주 인생…매일 좌절하고 도전했죠"
1994년 한국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29살의 나이로 최연소 서울대 음대 교수에 부임한 백혜선은 현재 미국의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겉보기에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의 궤적이지만 책의 제목에는 '좌절'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내세운 이유가 있다고 했다.

동급생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부러워하던 예원학교 시절부터 생전 처음으로 콩쿠르 1차 경연에서 탈락한 뒤 피아노를 포기하고 미국의 한 전화 회사 영업 사원으로 일하던 시절까지, 책에는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된 좌절의 기억들이 진솔하게 담겼다.

백혜선은 "나가는 콩쿠르마다 입상하며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된다고 느끼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나면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며 "나는 좌절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일이 좌절이었다"고 털어놨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50년 연주 인생…매일 좌절하고 도전했죠"
스승인 피아니스트 변화경의 제의로 '마지막 도전' 삼아 나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고 서울대 음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좌절의 시기도 끝나는 듯했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대 교수만 되면 인생의 모든 게 다 저절로 풀린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막상 일해보니 연주나 교육 여건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 있던 10년간 굉장히 안주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도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마음속 외침이 계속 있었습니다.

결국 사표를 내고 미국에 가서 연주자로서 커리어에 다시 도전하게 됐죠."
미국 무대는 그에게 쉽게 연주 기회를 내주지 않았고, 지방 도시를 돌며 연주 활동을 이어간 7-8년의 시간 역시 그에겐 좌절과 극복을 반복한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동양인으로서, 연주자로서 세계 무대에 나가는 것도,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50년 연주 인생…매일 좌절하고 도전했죠"
20대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는 그는 이 같은 인생사를 담은 책의 출간 제의를 처음 출판사로부터 받았을 때는 망설였다고 했다.

"내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쓸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던 그의 생각을 바꾼 건 최근 그가 겪은 상실의 경험이었다.

2018년 수십 년간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던 고(故) 이명아 대표를 떠나보낸 뒤 2021년에는 이모와 어머니, 동료 피아니스트 필립 케윈까지 한꺼번에 그의 곁을 떠났다.

"최근의 상실과 팬데믹 등을 거치며 우리에게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느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 그는 "최근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삶의 모든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50년 연주 인생…매일 좌절하고 도전했죠"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택한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온 그는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의 다음 챕터를 앞두고 있다.

그간 교수 활동과 지방 도시 공연에 매진했던 그는 오는 4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독주회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연주 활동을 늘려갈 계획이다.

많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롤모델로 꼽히는 그지만 여전히 음악적으로도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의 대단한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정말 자랑스러우면서도 그 힘이 부럽기도 해요.

제가 힘으로 이들과 어떻게 비교하겠습니까.

다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자극하는 연주, 좋은 책을 읽었을 때처럼 상상하게 하는 연주를 하기 위해 고민할 뿐입니다.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