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쓴 화장의 역사
타오르는 색채의 향연…신간 '메이크업 스토리'
'백옥 같은 피부'는 관용어처럼 쓰인다.

우리 고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 것을 보면 하얀 피부는 오래전부터 미를 상징했던 것 같다.

흰색에 대한 예찬은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전해졌다.

서기 600년경 국내 귀족들은 새의 배설물에 포함된 표백 성분을 일본에 전했다.

그 결과, 이 성분을 토대로 한 피부 미백제가 당대에 크게 유행했다.

692년 한 승려가 납으로 만든 미백제를 만들어서 일 왕비에게 바치자 왕비는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미백제의 독성이 결국 자신의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를 갉아 먹게 되리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때 그리 기뻐하진 못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랑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리사 엘드리지가 쓴 '메이크업 스토리'(글항아리)는 화장의 오랜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화장의 역사를 추적하는 책은 미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식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고대의 화장은 주로 공동체 의식을 다지거나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용도로 활용됐다.

고대 영국인은 전투에 나가기 전 대청(大靑) 잎에서 얻은 물감을 얼굴에 칠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페이스 페인팅'은 아름다움, 사회적 지위,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에는 유행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타오르는 색채의 향연…신간 '메이크업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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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를 상징했다.

고대 그리스나 중국처럼 서로의 존재도 잘 알지 못했던 두 문화권도 모두 피부 미백 화장품에 납 성분을 사용했다.

태닝이 유행하기 전까지 태양에 노출된 적 없는 피부는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있었다.

헤라 여신은 "하얗게 무장한" 존재로 찬사를 얻었다.

고대 로마에서도 밝은 안색과 흰 피부는 이상적인 여성을 뜻했다.

중국의 측천무후는 안색을 밝게 하고자 진주 크림을 발랐다.

빨강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루주는 수천 년 동안 입술과 볼에 사용된 붉은 빛의 안료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장품이다.

문화권마다 조금 다르지만, 붉은색은 주로 갈망, 사랑, 열정, 젊음, 건강과 관련이 있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개 행복을 의미하기에 중국·인도·베트남의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는 붉은색 예복을 입는다.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를 봐도 배우들의 붉은색 화장이 눈에 띈다.

로마의 여성들은 온건한 방식으로 뺨과 입술에 루주를 살짝 발랐다.

16세기 베네치아에선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화장을 두껍게 했는데, 루주도 많이 사용했다.

18세기 중반 서양에선 루주를 진하게 발랐다.

영국인들은 진하게 화장하는 프랑스 여성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타오르는 색채의 향연…신간 '메이크업 스토리'
검정은 모순적인 색이다.

애도와 죽음을 상징하면서도 권력, 비밀, 미스터리, 드라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여성들에게 검은색은 신성(神聖)을 의미했다.

이집트 고왕국(B.C2686~B.C2181)에서는 아이섀도의 일종인 콜(Kohl·화장 먹)을 눈썹 안쪽에서 코끝까지 발라 눈을 강조하고 눈썹에 음영을 주는 게 유행이었다.

일본에선 눈 주변뿐 아니라 치아까지 흑색으로 염색했다.

일본의 흑치(黑齒)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 말까지 이어졌다.

에도 시대(1603~1868)의 결혼한 여성은 모두 치아를 검게 물들여야 했다.

메이지 정부가 이를 금지하면서 점차 사라졌고, 현재는 게이샤들 사이에서만 흑치 문화가 잔존한다.

타오르는 색채의 향연…신간 '메이크업 스토리'
화장은 이처럼 다양한 색채들의 향연이었다.

일부 남성 지식인들이 화장한 여성들을 향해 "가짜 얼굴"이라고 비난했지만, 여성들은 그런 힐난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화장을 활용했다.

저자는 심리학자 엘레인 슬레이터의 말을 인용하며 화장의 긍정적 요소를 부각한다.

"화장 행위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한쪽 끝에 만화에 가까울 정도로 결점 없는 모습이 있다면 반대쪽 끝에는 민얼굴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일상의 화장이 존재한다.

"
솝희 옮김. 26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