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네트렙코와 엘리나 가랑차가 함께 부른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아리아 '뱃노래'. /도이치그라모폰 유튜브 채널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 내 마음은 도취되어 미소 짓네."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공연이 무대 위에서 한창 열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 '뱃노래'도 함께 울려 퍼지죠.

그런데 객석에 앉아있는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무대를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여성 관객 도라(니콜레타 브레스키)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라도 자신을 바라봐 주길 애타게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 절절한 마음이 닿은 듯 도라는 귀도를 발견하고 함께 바라봅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두 사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도는 수용소에서 독일군 만찬의 서빙을 돕다가, 독일군 책상에서 과거 도라와 봤던 오페라 음악이 담긴 LP 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수용소 어딘가에 있을 도라가 들을 수 있도록, 확성기를 활용해 '뱃노래'를 크게 틀죠. 도라는 음악을 듣자마자 남편이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임을 직감하고, 눈물을 글썽입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은 명작,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직접 연출을 하고 귀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죠. 순수하면서도 유쾌하고 사랑이 가득한 귀도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수용소에 갇혀서도 도라와 아들 조수아를 위해 보여준 행동들은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아리아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울려 퍼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만든 인물은 자크 오펜바흐(1819~1880)인데요. 오펜바흐도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을 가둬둔 수용소, 그곳에 있던 독일군 책상에 유대인 오페라의 LP가 놓여있을 리는 없죠. 더욱이 수용소에 유대인 오페라의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베니니 감독은 오히려 이 모순을 활용해 비극을 극대화했습니다. 영화 속 음악 하나에도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한 의미와 설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자크 오펜바흐.
자크 오펜바흐.
오펜바흐의 본명은 야콥 에베르스트였습니다. 원래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극심한 유대인 차별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유년 시절 가족들과 함께 모두 프랑스로 향하게 됐습니다. 프랑스에선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성을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이름인 오펜바흐로 바꿨습니다.

뛰어난 음악 실력을 자랑하던 그는 프랑스 음악학교를 나와 오페라 음악감독이 됐습니다. 이후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 들어가 활동하게 됐죠. 하지만 오펜바흐는 안락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36세에 작고 허름한 건물 하나를 사들여, 공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오펜바흐는 '오페레타'에 주목했습니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에 비해 짧고 가벼운 희극입니다. 음악에도 대중적이고 익숙한 멜로디를 넣어 관객들이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장르입니다. 오펜바흐가 남긴 오페레타는 100여 편에 달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지옥의 오르페우스(천국과 지옥)'입니다.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로 잘 알려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으로 끌려간 자신의 부인인 에우리디체를 구해옵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게 되고, 에우리디체는 죽음에 이릅니다.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의 '캉캉'./메디치TV 유튜브 채널

오펜바흐는 비극적인 내용을 재밌게 변형시켰습니다. 두 인물을 쇼윈도 부부로 설정한 겁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체를 구하러 가긴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나오다, 일부러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죠. 게다가 오펜바흐는 작품에 '캉캉' 음악을 넣어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를 강조했습니다. 관객들은 잘 아는 내용을 새롭고 유쾌하게 각색한 오펜바흐 실력에 감탄하며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오펜바흐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전쟁 등의 영향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바뀌게 된 겁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시민들은 더 이상 웃고 떠드는 공연을 찾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진지하고 엄숙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오펜바흐가 운영하던 공연장엔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호프만의 이야기'는 이런 위기 속에서 탄생한 명작입니다. 오페레타를 주로 만들었던 오펜바흐가 직접 만든 오페라는 단 하나뿐인데요. 그 작품이 '호프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더 이상 가볍고 즐거운 오페레타만 만들 수 없는 분위기를 인지합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보다 무게감 있고 진지한 오페라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 오페라는 <호두까기 인형> 소설을 쓴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입니다. 세 가지 에피소드가 연달아 나오는 옴니버스 형태를 띠고 있죠.

내용은 호프만이 경험한 세 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여인은 아름답지만 직접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기계 인형 올림피아입니다. 두 번째 여인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지만 폐병에 걸려 부를 수 없었던 안토니아입니다. 안토니아는 결국 노래를 불러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마지막 여인은 매력적이지만 호프만을 파멸의 길로 이끈 창녀 줄리에타죠. 영화에도 나온 '뱃노래'는 3막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이중창입니다. 호프만의 친구 니콜라우스와 줄리에타가 함께 부르는 노래죠. 니콜라우스는 보통 남장을 한 메조소프라노가 연기합니다.

자신을 아프게 한 세 가지 사랑 이야기를 하던 호프만은 현재 연인이자 오페라 가수인 스텔라와의 진정한 사랑을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한 결말은 공연마다 다릅니다. 오펜바흐가 미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후 많은 동료들이 그를 위해 작품을 재해석했습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다시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가 명작이 된 이유를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울려 퍼진 유대인 작곡가의 오페라 음악, 그리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서로의 굳건한 사랑을 전하고 확인하는 귀도와 도라의 모습이 가슴 아프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 담긴 음악과 미술 작품의 의미를 알고 나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며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과거 봤던 작품들을 다시 들춰보며, 그 의미를 깨닫고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