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역사학자가 쓴 연구서…"건축물은 시대를 총체적으로 반영"
건물에 드러난 제국주의의 흔적…신간 '식민지 건축'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보길 권한다.

만약 지금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퇴해 결국 조선에 병합되어 궁성이 폐허가 되고,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서양풍의 일본총독부 건물이 세워지고 그 벽담을 넘어 멀리 우러러보았던 흰 벽의 에도성이 파괴되는 광경을 말이다.

"
일본의 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쓴 '사라지려는 조선 건축을 위해'의 글 중 일부다.

그는 일본 정부의 독단적인 조선총독부 설립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건설과정에서 조선 왕궁을 해체하고,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실제 조선총독부 건물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국왕이 정치를 행한 근정전 사이에 들어섰다.

왕궁 정전인 근정전은 조선총독부 청사에 가려졌다.

강녕전과 교태전 두 전각은 창덕궁으로 이전됐다.

일본 정치가와 건축가들은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백안시했다.

그들이 관심을 둔 건 일본 제국주의의 위대함을 드러낼 수 있는 건물의 위용이었다.

건축가들이 총독부 건물을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외관에 화강암으로 마감한 외벽을 입힌 이유다.

그들은 건물 정면과 맞닿는 광화문 거리와 축선을 일치시켰고, 청사 앞에 있던 광화문도 옮겼다.

내부에는 거대한 홀이나 옥좌를 뒀고, 마루는 대리석으로 시공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유리로 화려함을 더했다.

일본 정부는 1916년부터 1926년까지 이렇게 공을 들여 탄탄하게 조선총독부를 지었으나 건물 수명이 그리 길진 않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1995년 철거됐다.

건물에 드러난 제국주의의 흔적…신간 '식민지 건축'
일본 건축역사학자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쓴 '식민지 건축: 조선·대만·만주에 세워진 건축이 말해주는 것'(마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 식민지 건축물에 구현된 제국주의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가 식민지에 건설했던 청사, 조차지, 철도 부속지 등의 건축물을 '식민지 건축'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건축물은 시대를 총체적으로 반영하기에 건축을 통해 역사를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식민지 건축은 지역의 전통적인 재료로 지은 것이 아니라 벽돌, 시멘트, 철 등 20세기 재료로 지었는데, 이 재료들의 생산과 이동은 그 자체로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조선총독부, 경성부 청사, 조선은행 본점, 대만총독부, 만주국 제1청사와 제2청사 등 다양한 일제 식민지 건축을 조명하면서 어떻게 이 건물들이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했는지 설명한다.

또한 식민지 건축을 따로 떨어진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식민지 권력, 지식, 인물, 재료의 네트워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식민지 건축을 마주하는 것은 지배국과 그 국민에게, 즉 일본과 일본인에게 지배를 바로 보게 하는 것"이라며 "식민지 건축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 교육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역사 인식을 둘러싼 동아시아 국가들의 다툼도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최석영 옮김. 288쪽.
건물에 드러난 제국주의의 흔적…신간 '식민지 건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