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바람과 서늘한 기후의 샌프란시스코는 시애틀과 함께 미국 최고의 커피산업 도시다. 서부 해안 위편 시애틀의 스타벅스가 커피산업 2세대를 주도했다면 아래편 샌프란시스코의 블루보틀과 리추얼은 커피산업의 제3의 물결인 스페셜티 커피에 영향을 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커피 투어를 하려면 타운홀(시청)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1906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대형 돔과 함께 대칭 구조, 웅장함 등을 특징으로 하는 보자르 건축 스타일이다. 펜실베이니아의 강철과 캘리포니아의 화강암, 인디애나의 사암 등이 쓰여 미국 동서화합의 대표적 건축물로 꼽힌다.
블루보틀을 키운 샌프란시스코…'스페셜티 커피' 열풍의 출발지
타운홀 주변에는 블루보틀, 포배럴, 사이트글라스와 같은 스페셜티 커피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계 니콜라스 조의 레킹볼, 미국 최초의 아이리시커피바 부에나비스타카페,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커피무브먼트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커피산업은 스페셜티 커피와 전통적인 커피산업을 압축시킨 듯 농밀하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경제력이 강하고, 지적 문화적 수준이 높은 샌프란시스코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스페셜티 커피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블루보틀 커피

샌프란시스코 블루보틀 라떼
샌프란시스코 블루보틀 라떼
2002년, 클라리넷 연주자 제임스 프리먼은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 ‘푸른병 커피’에서 영감을 받아 블루보틀 커피를 열었다. 블루보틀 커피는 로스팅 후 48시간 이내 커피만을 사용하고, 한 잔의 커피를 내리는 데 5분 이상이 필요한 슬로 커피를 표방한다. ‘커피업계의 애플’이라는 표현으로 화제가 됐지만 현지에선 오랜 노력과 실력으로 성장한 회사로 평가받는다.

오클랜드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는 미국 내에서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발을 넓혔다. 가장 상징적인 매장은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의 뒷골목 민트플라자에 있다. 블루보틀 시그니처인 페이스트리와 가벼운 브런치 메뉴는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맛볼 수 있다.

블루보틀 커피의 추천 메뉴는 가벼운 아침 식사와 벨라도노반 블렌딩 에스프레소, 지브롤터 라테다. 벨라도노반은 장미향이 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와 질감 있는 인도네시아 커피를 사용해 적절한 산미와 고소함의 밸런스가 좋다. 지브롤터 라테는 블루보틀 바리스타들이 지브롤터 글라스에 카페라테를 만들어 마시던 것에서 유래했다. 더블샷 에스프레소에 소량의 스팀밀크를 추가한 밀크커피다. 현지에서는 정식 메뉴에 존재하지 않는 ‘단골만 알고 주문하는 커피’다.

‘오지슬로드립’이라는 이름의 교토식 콜드브루 커피는 블루보틀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 교토식 더치 커피는 질감이 농밀하고 단맛이 깊다. 샌프란시스코의 블루보틀은 민트 플라자가 대표적이지만, 페리빌딩 내부의 블루보틀 매장도 시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리추얼 커피

브라운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아일린 리날디는 스페셜티 커피산업의 존경받는 업체 ‘에스프레소비바체’의 커피를 마시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쓴 커피가 아니라 좋은 커피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5년 샌프란시스코 미션지구에 리추얼 커피를 창업했다.

리추얼은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는 가장 신성한 행위며,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상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는 의식(ritual)과 같다”는 리날디의 각오이자 사명이다.

리추얼 커피는 미션지구와 발렌시아 거리의 경계선상에 있다. 매장을 대표하는 커다란 깃발과 푸어오버(Pour Over) 커피바는 여러 차례의 리모델링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리추얼의 대표적 커피는 스윗투스 커피. 스윗투스는 여러 커피를 블렌드한 블렌딩 커피가 아니다. 싱글 오리진 커피(단종 커피)를 시즌에 따라 제공하는 브랜드 커피다.

리추얼 커피의 싱글 오리진 브랜딩 커피는 꼭 푸어오버 방식으로 마셔볼 것을 추천한다. 미국식 스페셜티 커피의 푸어오버 방식은 정확한 계량과 온도 유지 등으로 아름다운 향미의 스페셜티 커피 추출에 적합하다. 리추얼과 멀지 않은 곳에는 리추얼에서 독립한 포배럴 커피,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사랑하는 필즈커피 본점, 타르틴 등이 있다.

사이트글라스 커피

사이트글라스 커피는 블루보틀 로스터 출신 재러드 모리슨과 저스틴 형제가 2009년 시작했다. 2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파격적인 대형 스페셜티 커피 매장을 선보였다. 사이트글라스는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인 잭 도시가 투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블루보틀 커피가 다양한 헤지펀드 자금을 받아 성장했고, 필즈커피는 페이스북 저커버그의 도움을 받았듯 샌프란시스코의 닷컴 기업들은 스페셜티 커피산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이트글라스 커피 본점은 시빅센터에서 멀지 않다. 트위터 본사에서 가까운 폴섬스트리트 근처에 있다. 매장 입구에 초대형 프로밧 빈티지 로스터가 자리 잡고 있다. 두 대의 키스반더웨스턴 에스프레소 머신이 커피바의 양쪽에 있다. 매장의 대표 블렌딩은 오울스하울. 맹렬한 산미가 인상적이다.

블루보틀 커피가 대중적인 커피를 지향하고, 리추얼 커피가 커피의 향미와 단맛을 추구한다면, 사이트글라스는 커피의 개성을 극대화했다. 매장의 추천 커피는 퀵커피. 퀵커피는 스타벅스의 오늘의 커피를 사이트글라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사이트글라스의 라테와 같은 밀크커피는 산미와 마주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레킹볼

레킹볼은 오래된 건물이나 구조물을 파괴하는 쇠공과 같은 강력한 임팩트를 의미한다. 레킹볼 커피 로스터는 스페셜티 커피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트리시 로드갭과 미국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길드를 시작했던 한국계 니콜라스 조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스페셜티 커피 회사다.

30년이 넘는 스페셜티 커피 경험을 가진 트리시 로드갭은 미국 1세대 큐그레이더(커피 감별사)이자, 스페셜티커피협회 로스터 길드 임원, 세계 바리스타대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니콜라스 조는 2002년 워싱턴DC에서 머키 커피를 시작으로 미국 1세대 스페셜티 커피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딸을 위한 ‘유어 코리언 대드(Your Korean Dad)’라는 유튜브와 틱톡 계정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아빠’ 캐릭터의 셀럽이 됐다. 레킹볼 커피는 피어에 가까운 유니언 스트리트 매장이 유명하다. 혁신적인 로고가 인상적이고, 매장 내부의 파인애플 벽지도 SNS에서 화제다. 매일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를 내놓는데 레킹볼 커피의 시그니처는 고지대에서 재배된 청량하고 깔끔한 수세식 커피. 에스프레소뿐만 아니라 푸어오버 커피의 선명하고 청량한 산미가 극강이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심재범 커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