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있는 OTT]26살에 왕좌 오른 엘리자베스 2세…화려함에 감춰진 '인간의 고뇌' 그려
왕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크라운’(사진)은 70년 동안 왕관의 무게를 짊어졌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삶을 파고든다. 화려한 권력의 이면에 감춰진 군주의 고독과 중압감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 8일 영국의 여섯 번째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로 서거했다. 1952년 26세에 즉위해 최장기간 권좌를 지켰다. 70년214일간 영국과 영연방을 통치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다. 여왕이 서거하자 더 크라운이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3위까지 역주행한 것은 그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더 크라운은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된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대서사시다. 2016년 시즌1을 선보였고 시즌4(2020년)까지 공개됐다. 오는 11월엔 시즌5가 방영되며 시즌6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제작비는 지금까지 9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1부터 시즌4까지 40부작에 달하지만 몰입감이 커서 지루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되기 전, 남편 필립공과 결혼식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조지 6세의 사망으로 여왕 자리에 오르지만 그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인간 엘리자베스와 여왕 엘리자베스, 이 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뇌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할머니는 여왕이 된 그에게 편지를 보내 강조한다. “엘리자베스, 이제 이 여성은 전혀 다른 사람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됐다. 두 엘리자베스는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왕이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왕이 이겨야 한다.” 작품에서 이 대사는 곧 엘리자베스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 여왕은 고민 끝에 정치적 선택들을 해 나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 영국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도 등장해 깊이를 더한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식 장면에서부터 물밑에 있는 온갖 정치적 이해 관계를 보여준다. 왕실 내 각종 권력 다툼, 사랑과 음모 등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시즌별로 변모하는 여왕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시즌1·2에서는 젊은 나이인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가는 과정, 시즌3·4에선 성숙한 군주가 돼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시즌별로 배우들도 달라진다. 시즌1·2에선 클레어 포이, 시즌3·4에선 올리비아 콜먼이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했다. 둘 다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책읽어주는 남자’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감독 특유의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한 연출도 빛을 발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