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안산 선감도서 개토제…인권유린 아동 150여구 매장 추정
"과거의 악과 화해할 수 있길"…'선감학원' 유해 시굴 첫삽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감금, 학대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된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유해 발굴이 첫 삽을 떴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유해 매장지에서 개토제(開土祭)를 열고 시굴 현장을 공개했다.

시굴에 앞서 사방에 수풀이 우거진 매장지에는 파란 방수포가 깔리고 그 위에 사과, 배, 대추 등이 오른 제사상이 차려졌다.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대표는 추도사에서 "선감학원에 수용된 소년들은 혹독한 강제노동에 동원됐고, 배고픔과 괴로움 등에 못 이겨 탈출을 시도하다 죽은 뒤에는 적법한 절차 없이 암매장당했다"며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어린 원혼들께 머리 숙여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번 유해 시굴은 공공·민간을 통틀어 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국내 인권 침해에 대해 이뤄지는 첫 대규모 시굴로 의미가 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공식 기록에는 24명의 사망자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피해 생존자들은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악과 화해할 수 있길"…'선감학원' 유해 시굴 첫삽
이날 개토제에는 소설가 김훈도 참석했다.

그는 2010년부터 선감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추도사에서 마을 원로 주민들로부터 뒤늦게 선감학원의 비극을 알게 됐다면서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이 송구스러웠고, 등에서 진땀이 났다"고 털어놨다.

이후 여러 차례 이곳에 혼자 와 소주를 따르고 절을 하고 돌아갔다는 그는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오직 사실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번 개토식에서 많은 사실이 확인돼 화해의 단추가 잡히기를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 조사단원 등이 차례상 앞에서 배례한 뒤 시굴 작업이 시작됐다.

곳곳에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니는 화창한 날씨였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선감학원은 사망한 아동들의 시신을 수감 아동이 직접 묻게 했다.

유해가 땅 밑 얕은 곳에 묻힌 것으로 추정돼 작업은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 대신 손호미 등을 이용했다.

우종윤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 조사단장은 봉분 한 기의 절반을 먼저 파내 단면을 살핀 뒤 "인위적으로 땅을 판 흔적이 발견돼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 단장은 "이곳 토양이 주변 지층과 구성 등이 다르다는 게 확인됐다"며 "내일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악과 화해할 수 있길"…'선감학원' 유해 시굴 첫삽
현장을 지켜본 피해자들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영화(70) 씨는 "부모님도 있고 집도 있는데 13살에 잡혀 왔다"며 "당시의 참혹함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몸서리쳤다.

안씨는 "죽은 동료를 직접 묻기도 한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고 했다.

선감학원은 조선총독부가 1942년 태평양전쟁의 전사를 확보한다는 구실로 설립한 부랑아 감화시설이다.

해방 이후에도 폐원되지 않고 부랑아 갱생·교육 등을 명분으로 1982년까지 아동과 청소년을 강제로 연행해 격리 수용했다.

기록상으로 선감학원에 수용된 인원은 최소 4천691명이다.

원생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폭력과 고문 등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다수는 구타와 영양실조로 사망하거나 섬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수용 아동의 85.3%가 13세 이하였다.

피해 생존자 190여 명이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이날 시굴이 시작된 장소를 암매장지로 지목했다.

이곳에는 유해 150여 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 30일까지 진행되는 시굴은 전체 매장 추정지의 약 10%에 해당하는 면적(900㎡)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시범 발굴'이다.

진실화해위는 그 결과를 반영해 다음 달 진실 규명을 결정하고서 경기도에 전면적인 발굴을 권고할 계획이다.

"과거의 악과 화해할 수 있길"…'선감학원' 유해 시굴 첫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