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한 그룹 트와이스 채영, 나연 /사진=유튜브 캡처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한 그룹 트와이스 채영, 나연 /사진=유튜브 캡처
유튜브 음주 콘텐츠, 이른바 '술방'이 인기를 얻으며 웹 예능 업계를 장악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돌·배우 할 것 없이 신곡·신작 홍보를 위해 술 먹방에 출연하는 추세다.

최근 트와이스는 데뷔 7년 만에 유튜브를 통해 '음주 방송'으로 컴백을 알렸다. 해당 영상 조회수는 약 731만회를 달성했다. 기존에는 아이돌이 술 마시는 모습을 노출하면 자칫 구설에 오를까 몸을 사렸다면, 지금은 꾸밈없는 매력으로 스스로를 '더 알리기 위해' 술방 콘텐츠에 출연하는 등 그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신비주의' 콘셉트가 깊숙이 자리했던 연예계에서 인간미 넘치고 친숙한 모습을 내세운 술방 콘텐츠를 주도하자 시청자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신선해서 좋다는 평가가 따른다.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평소 유튜브에서 아이돌이 출연하는 술방을 즐겨보는 20대 A씨는 "화려할 줄만 알았던 이들이 술을 마시며 인생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이 사람 냄새가 나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술방을 틀어놓고 혼술을 즐기는 자취생 B씨도 "퇴근 후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면 외로웠는데, 시끌벅적한 아이돌 술방을 보며 함께 마시듯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가장 상위에 분류되는 술방 채널은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이다. Mnet 랩 서바이벌 '고등래퍼' 출신 이영지가 진행자로 나서 게스트와 1:1로 취중진담을 펼친다. 이영지의 시원시원하고 과감한 진행 아래 게스트 각자가 좋아하는 술을 곁들이며, 서로 솔직담백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한 콘셉트의 토크쇼다.

채널은 159만명(9월 23일 기준)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현재 업로드된 모든 회차가 조회수 90만회를 훌쩍 넘는다. 있지(ITZY)의 채령이 나온 회차는 무려 1242만 뷰를 돌파했다.

채널에는 신인뿐 아니라 오랜만에 컴백한 아이돌, 심지어는 최근 내한 공연을 마친 크리스토퍼까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평소 해당 채널을 즐겨보는 구독자 A씨는 "이영지와 게스트, 그리고 스텝들까지 술친구가 된 것처럼 인간적인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며 "술을 곁들이며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는 아이돌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신선하고 재미있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술트리트파이터', '해장님'
유튜브 채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술트리트파이터', '해장님'
이 밖에도 술을 소재로 한 유튜브 웹 예능으로는 '술트리트파이터', '이슬라이브', '해장님' 등이 있다. 세 개의 채널 모두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끌자 시즌제를 도입했다. 김희철이 MC를 맡은 '술트리트 파이터'는 시즌1에서 '술꾼도시 여자들' 배우들이 등장하며 인기를 끌자, 올 6월부터는 라인업을 늘려 시즌2를 선보이고 있다.

아이돌의 자체 콘텐츠에서도 팀원들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술방 콘텐츠가 많아졌다. 우주소녀, 더보이즈, 아스트로, 세븐틴은 술방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인기를 끌었다.

세븐틴은 구독자 840만명이 넘는 개인 채널을 통해 선보인 술방 콘텐츠가 조회수 460만회를 달성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븐틴 팬 A씨는 "13명의 멤버 모두 카메라 의식을 안 하고 대학생 MT에 가서 술 마시며 신나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개인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공개하는 스타들이 본인의 채널에서 다른 스타와 함께 술방을 하는 사례도 많아지는 추세다. 대표적으로는 가수 딘딘 개인 채널의 '알코올왕'과 가수 소유 개인 채널의 '노상어게인' 등이 있다.

술방에 출연하는 스타들이 많아지자 술방 콘텐츠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주류업계도 늘었다. 술방을 주 콘텐츠로 미는 채널들은 주류 및 제작 지원을 받아 매회차 PPL을 넣기도 한다. '술트리트 파이터'에서는 청정제주숙취 '깨수깡'의 협찬을, 소유의 개인 채널 '노상어게인'에서는 롯데칠성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만 미디어 음주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유튜브에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술방 콘텐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타들의 음주 장면이 자칫 과도한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 기관이 '국민건강증진법'을 근거로 미디어의 주류 광고 및 음주 장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음주 장면은 음주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실제 음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의 음주 장면을 시청한 후 술을 마시고 싶었는지 설문한 결과, 약 20%(TV 23%·유튜브 17.9%)가 '그렇다'고 했다.

특히 유튜브는 방송과 달리 시청연령제한이 없어 청소년 음주 문제를 이끌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아이돌 팬의 경우 보통 10대가 많은데, 음주 모습을 친근하고 재밌는 모습으로 다루면 음주가무를 조장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성인은 물론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음주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라 하고 싶은 '모방학습'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소년들이 동경하는 아이돌이나 배우의 음주 모습을 보고 모방심리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술방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최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모습으로 많이 노출되고 있다"며 "부정적 장면이 더 많이 노출될수록 청소년들은 유혹되기 쉽다.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 단순 노출 효과에 따라 청소년 모방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튜브 플랫폼 자체에서의 제재, 법적인 제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역시 "음주를 권하는 거 자체로 개인의 삶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있어 술방 콘텐츠의 지나친 예능화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위가 높은 음주 영상은 제재를 가하거나, 술방 중에서도 건전하고 의미 있는 콘텐츠 위주로 추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술방 콘텐츠는 술을 '매개체'로 해서 최대한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김세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