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영우' 주역 박은빈이 기자들과 만나 맨 처음 한 일은
"제가 명함을 받아도 될까요?"

낯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기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배우가 성큼 다가와 일일이 명함을 받기 시작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주역 박은빈이었다.

그는 지난 22일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드라마 종영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올해 가장 뜨거운 인기를 얻은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은빈. 그는 인터뷰 직전 기자들과 한 명씩 눈을 맞추고 명함을 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보통 연예인 인터뷰의 경우 기자 명함은 기획사 홍보 담당자들이 받아둔다. 소수의 기자가 모인 경우엔 연예인이 직접 받기도 하지만, 수십 명의 기자가 온 인터뷰에서 일일이 명함을 받고 인사까지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박은빈은 한 명씩 마주하며 자신을 만나기 위해 와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앉은 테이블에 명함을 올려놓더니, 기자들이 앉은 자리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했다. 자신에게 질문이 올 때마다 누군지 최대한 파악하며 답하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인터뷰에 다소 늦게 도착한 기자들에게도 꼭 명함을 달라고 한 후 인사를 나눴다.

박은빈은 "인터뷰가 끝나면 명함이 남는 것 같다"며 "기자님들과 같이 있었던 순간을 추억하고 싶어 받아둔다"고 말했다. 단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 그의 따뜻함과 영리함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인터뷰] '우영우' 주역 박은빈이 기자들과 만나 맨 처음 한 일은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박은빈은 내내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우영우'의 폭발적인 흥행에도 그는 그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았다. 1회 시청률은 0.9%에 그쳤지만 입소문을 타고 고공행진 했다. 마지막 16회에선 17.5%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시청률은 전혀 목표로 삼은 게 없었어요. 그런데 초반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놀라웠고 솔직히 무섭기도 했어요. 진정성에 있어선 자신감이 있었지만, 제가 무지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반응이 나올 수 있어 걱정이 됐죠. 하지만 영우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자세로 반응들을 살펴보려 했습니다."

박은빈은 작품을 선택할 때부터 신중을 기했다. 실제 그는 1년간 출연을 거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되는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은 왔지만, '배우로서 어떻게 해내야 할까'를 생각하면 암담했어요. 연기를 해야 할 때 어떤 톤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래서 작가님과 감독님을 만나 뵙고 '자신없다' 말씀드리려 했었어요."

하지만 제작진과의 만남 이후 박은빈의 마음은 바뀌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던 기존의 방식을 스스로 깨뜨림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원래는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할 때 혼자 하는 게 익숙하고 편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혼자여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하고 절실하게 끈을 붙잡고 싶은 느낌이었는데 모두들 도와주신다고 했죠.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고, 두터운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영우를 완성했습니다."
[인터뷰] '우영우' 주역 박은빈이 기자들과 만나 맨 처음 한 일은
그는 영우를 연기하기 위해 자폐 관련 영상 자료를 찾아보진 않았다. 대신 자폐 진단 기준 등을 살펴보고 고민하며 캐릭터를 쌓아갔다. "드라마는 어떤 인물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창작물인 것 같아요. 자폐라는 특성을 캐릭터의 한계로 두고 싶진 않았어요. 연기할 때도 증상 구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마지막 회에 나온 친모 태수미 변호사(진경 분)와의 대화를 꼽았다. 영우는 이 장면에서 자신을 흰고래 무리에 속해 지내는 외뿔고래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박은빈은 "이 대사에 자폐인을 넘어 세상 모든 외뿔고래에게 전하는 작품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제가 자폐인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외뿔고래들에겐 이 세상엔 흰고래와 함께 살아가는 외뿔고래가 많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작품은 신생 채널 ENA에서 방영됐음에도 큰 성공을 거둬 더욱 화제가 됐다.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에서 글로벌 순위 3위까지 올랐다. "시청률 3%만 나와도 대박이라고들 하셨지만, 시청률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 되다보니, 자폐 커뮤니티가 활발한 미국에선 우리 드라마를 어떻게 평가해줄까 궁금하긴 했죠. ENA 채널에서도 이토록 잘되고, 넷플릭스에서의 성적도 좋아서 뿌듯합니다. 많이들 알게 되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시즌 2 출연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고 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받은 만큼 후속작을 내보낸다면 오리지널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