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 쇼팽콩쿠르 우승…베트남전쟁 중 부서진 피아노로 음악 배워
"쇼팽 음악의 단순함에 숨겨진 지혜는 특별…음표 하나하나가 이야기 담아"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당타이손 "고난이 예술을 깊게 해"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당신의 감각을 풍성하게 하고 예술을 깊게 할 거예요.

"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떨친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음악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스토리로 더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인 타이 티 리엔은 인도차이나 전쟁 때 프랑스인들이 버리고 간 피아노로 하노이음악원을 공동 설립한 베트남의 1세대 피아니스트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하자 폭탄이 쏟아지던 하노이를 피해 제자들과 함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타이 티 리엔은 당시 하노이음악원 초등과정에 갓 입학한 7살 먹은 아들 당 타이 손을 지극정성으로 가르쳤다.

물소가 끄는 수레로 공수해 온 피아노는 처참한 상태였지만 이후 9년간 당 타이 손은 어머니의 헌신 속에 전쟁통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하노이음악원을 방문한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이작 카츠의 눈에 띄어 모스크바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3년 후 쇼팽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는 당 타이 손이 오는 16∼21일 춘천·통영·서울에서 내한 투어를 갖는다.

주력 레퍼토리인 쇼팽을 비롯해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 음악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내한 직전 폴란드에 공연을 마치고 베트남에 잠시 체류하던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당신에게 쇼팽의 매력과 의미는.
▲ 쇼팽의 음악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쇼팽 음악의 단순함에 숨겨진 지혜는 정말 특별하다.

몇 안 되는 음표로 작곡됐지만, 음표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유년은 단순하고 중장년은 너무 복잡하고, 나이가 들면 다시 현명하게 단순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지 않나.

쇼팽의 음악에도 그런 인생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이번에 드뷔시와 라벨도 선보이는데.
▲ 처음 건반을 만진 순간부터 11년간 프랑스음악에 다가가는 것을 배웠다.

내 첫 스승인 어머니는 어린 시절 프랑스령 베트남에 있던 프랑스 피아니스트로부터 피아노를 처음 배웠고, 이후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프랑스 음악 전문가가 됐다.

프랑스 음악을 단순히 인상주의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프랑스 음악은 빛, 색감, 시적인 요소들, 시각적인 소리의 표현이 중요하다.

내게는 프랑스 작곡가 중 드뷔시와 라벨이 가장 중요하다.

-- 베트남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세계적 연주자가 됐다.

전쟁통에 헌신적으로 음악을 가르친 어머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이런 고난의 경험이 음악 세계에 미친 영향은.
▲ 고난과 역경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다.

고난과 역경이 싫고 어렵고 피하고 싶겠지만 이는 매우 단편적인 생각이다.

예술가에게 이런 고난은 괴롭고 심각한 곡을 연주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위대한 음악가들을 보라. 누구 한 명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을 살았다'라는 사람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슈베르트, 베토벤, 천재였던 모차르트까지…그들이 행복하기만 했는가.

당신의 눈물이 당신의 감각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고, 예술을 더 깊게 해 줄 것이다.

이제 심지어 나는 예상치 않았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래 뭐 나중에 내 음악에 도움이 되겠지'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당타이손 "고난이 예술을 깊게 해"
-- 한국에서는 임윤찬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면서 다시 한번 클래식 붐이 이는 분위기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어떻게 보나.

▲ 한국은 문화적으로 매우 성숙한 나라다.

국제콩쿠르에서 선두에 있는 대부분 젊은 음악가들이 한국 내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도 그 음악적 수준을 드러낸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종종 우리가 서양음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서양에 나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그런 시간은 다 지나갔다.

내가 처음 음악을 배우던 시절 동서양의 문화적 장벽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클릭 한 번으로 넘쳐나는 음악과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음악을 배울 때 늘 배울 기회가 적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변화이고, 아시아 음악인에게 큰 기회다.

아시아의 음악도들은 직관력이 강하고 감성이 뛰어난 경향이 있다.

음악의 작은 부분들을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부분이 탁월하다.

반면에 서양 음악도들은 음악을 어떻게 구조화해야 할지 넓은 관점에서 본다.

그런 부분은 아시아 음악도들이 좀 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 내한을 앞둔 소감은.
▲ 이렇게 오랜만에 대중을 만나는 게 무척 흥분되고 즐겁지만, 부담도 있다.

투어와 연주로 무대를 계속 이어갈 때 음악에서의 신선한 감각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무대에 설 수 없었던 2년 반의 시간 때문에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무대를 갈망하고 있다.

기대감 속에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