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산책
여주 파사산성

신라·백제·고구려의 접전 지역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져요"
성벽 중간 연인 소나무 두 그루
파사산성 정상에 서면 이포대교와 남한강의 풍광뿐만 아니라 멀리 이천, 양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파사산성 정상에 서면 이포대교와 남한강의 풍광뿐만 아니라 멀리 이천, 양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산림 면적이 국토의 62.6%나 되다 보니 산성(山城)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산성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로 유명한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 몽골군의 침입을 물리친 안성의 죽주산성이 그렇지요. 이름난 산성도 많지만 형태만 겨우 남아 있는 경기 여주의 파사산성(婆娑山城)을 소개하는 것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곽길과 뒤로 보이는 탁 트인 남한강의 풍광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소박한 산책을 떠나고 싶다면 파사산성을 따라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라 파사왕 때 쌓은 천년 산성
파사산성을 오르는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이포대교다. 이 다리를 언급하지 않고는 파사산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 이포대교가 있는 자리에는 예전에 이포나루가 있었다. 배가 중요한 운송수단이던 조선시대까지 이포나루는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번화한 곳이었다. 대개의 포구가 그렇듯 이포나루 역시 많은 애환을 품고 있는 곳이다. 세조 2년(1456)에 폐위된 단종은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길에 오른다. 한양의 광진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내려온 단종은 이포나루에 잠시 내려 눈물을 뿌렸다. 그때 단종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인 어수정(御水井)이 이포나루에서 가까운 대신면에 있다.

이포대교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해발 230m의 야트막한 야산이 보인다. 여주 대신면 천서리(川西里) 파사산이다. 천서리는 이름 그대로 ‘남한강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파사산의 유래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먼 옛날 파사국의 자리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 때 성을 쌓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파사산성 남문으로 향하는 산길은 제법 가파르다. 자박자박 걸어서 도착한 남문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성문 양쪽 육각형의 주춧돌이 한때 번성했던 산성의 위상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성벽의 규모는 둘레 943m, 높이는 4.3~4.8m다.
그림 같은 풍경…곡창지대 펼쳐진 군사적 요충지
천년 산성에 내려앉은 가을…남한강 벗삼아 성곽 한바퀴

산성은 타원형인데, 정상을 향해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성벽 폭이 생각보다 넓다. 마치 하늘을 향해 놓인 듯한 성벽 위를 걸어 오르면 여주 일대의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성벽 중간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마주하고 서 있다. “이 사이로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팻말 때문에 ‘연인 소나무(사진)’라는 애칭이 붙었다. 소나무를 뒤로하고 산성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겹겹이 늘어선 산들과 그 사이를 흐르는 남한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파사산성 최고의 사진 포인트이기도 하다. 여주 사람들은 신륵사 앞을 지나는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여(驪)’란 검은 말을 뜻한다. 강물에서 말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지만 밑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물빛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산성에 오르면 유성룡이 왜 그토록 파사산성 재건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여주와 이천, 양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의 입지로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양평의 향토지 기록에 따르면 파사산성 일대는 수자원이 풍부한 데다 곡창지대인 만큼 군량미 축적도 쉬웠다고 한다. 남한강의 상류 쪽으로는 여주와 충주·탄금대로 이어져 문경새재에 닿고, 하류 쪽으로는 양평·양수리·한양으로 이어지니 서해로 빠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반면 적군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야 하니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을 것이다.

유성룡은 파사산성의 절경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파사성 위로 풀이 더부룩하고 파사성 아래로 물은 빙 둘렀네. 봄바람은 날마다 끊임없이 불어오고 지는 꽃잎 무수히 성 모퉁이에 날리네.”
산성을 놓고 격돌했던 치열한 역사의 흔적
전란이 있을 때마다 파사산성은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됐다. 파사성은 한강을 차지하려는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접전이 벌어지던 곳이다. 삼국통일 후에는 신라군과 당나라 군대가 7년 전쟁 중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사명대사의 제자였던 승병장 의암(義巖)이 승군을 동원해 3년에 걸쳐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으로 고쳐 쌓았다.

파사산성 정상에서 성벽을 타고 동문터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아직도 복원이 마무리되지 않아 잡풀과 무성한 나무들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일부는 복원 공사로 인해 막혀 있기도 하다. 동문터와 서문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 돌보는 이 하나 없었던 모양이다. 산성 안에는 우물터와 문루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남문에서 시작해 동문, 서문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면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파사산은 주변에 다른 산봉우리가 없어서 일출,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 이곳만은 꼭 가보세요

천년 산성에 내려앉은 가을…남한강 벗삼아 성곽 한바퀴

파사산성이 있는 대신면 천서리는 막국수로 유명하다. 흥원막국수, 강계봉진막국수 등 10여 군데가 들어서 촌락을 이루고 있다. 면 위에 오이와 절인 무, 김 등을 고명으로 얹어 독특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간이 세고 강원도에서 먹을 수 있는 막국수보다 맵다.

여주=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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