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증권투자자를 위한 매매방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서울과 경기,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사무실과 독서실을 합친 듯한 매매방 이용자의 상당수는 50대 남성이다.

개인전업투자자가 꿈인 이들은 회사에 출근하듯이 매일 매매방으로 간다.

돈을 잃는 와중에도 입실료를 내고 매매방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김수현 씨는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민음사)에서 매매방에 입실하는 중년 남성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결과를 서술한다.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이 원글인 이 책은 서울의 한 매매방에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진행한 현지조사의 결과물이다.

우선 저자는 매매방을 '조기 은퇴 중년 남성의 자기만의 방'이라고 표현한다.

매달 20만∼30만 원가량 입실료를 내야 하지만 개미들이 매매방을 이용하는 이유로 '집에서 나오기 위함'을 꼽는다.

입실자들은 은퇴 이후 일하는 아내와 달리 자신의 '집에서 노는 실업자'로 보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매매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매매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설정함으로써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저자와 같은 매매방을 이용한 이들은 스스로 매매방 외부 사회로부터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 된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매매방은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개인전업투자자들은 비슷한 처지와 동기로 매매방에 모이지만, 매매방은 긴장과 갈등의 공간이라고 한다.

저자가 있던 매매방은 2015년부터 파생상품 투자자들이 퇴실하고 국내주식 투자자 중심으로 '선수 교체'가 일어나면서 입실자는 자리만 공유할 뿐 서로에 대한 관심도 간섭도 최소화하는 철저한 개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매매방의 암묵적 규칙으로 '아는 척하지 않기'가 있으며 이는 과거 종목 추천을 해 주고 결과적으로 손실을 본 입실자들 간의 갈등으로 생겨났다고 전한다.

저자의 논문은 제1장 '작게 여러 번 따서 한 방에 날린다'에서 소개한 '실패하는 개인투자 3단계'로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개미들이 실패에도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를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당시 "글쓴이 입맛에만 맞는 사례를 모아 편향적으로 썼다"라는 댓글을 읽었다는 저자는 "사실 내 입맛은 그와는 정반대 맛이다.

나 역시 '생각보다 많은 수의 개인투자자가 돈을 잃는다'라는 쓴 진실을 삼키고 소화하기까지 참 힘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아울러 이 책이 '개인투자자는 실패한다'를 입증하기 위함이라거나 '주식투자를 하지 마라'라는 주장을 관철하려는 단순한 비관론으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저자는 "이 책은 주식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식하는 '사람들', 나아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탐구하는 책"이라며 "계속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을 매매방의 투자자들은 어떤 해석과 내러티브로 유지하고 있는가를 통해 자신의 투자를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352쪽. 1만6천 원.
매매방에 입실하는 중년 남성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