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거상 추리번역소설상 수상 후 첫 장편

"그런데 결혼이란 게 동거에 따른 고독을 선택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예상 불가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보험사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게 아닐 듯하고요.

"
'블랙 유머'를 좋아한다는 윤고은은 신작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 펴냄)에서도 젊은 작가답지 않은 능청스러움과 노련함으로 툭툭 내뱉는 듯한 블랙 유머를 구사한다.

이는 프로퍼갠더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던지는 경향이 짙어진 요즘 젊은 작가들과 윤고은이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계의 부조리와 인생의 비애, 개인의 고독을 윤고은은 독자적인 문학적 기호로 승화해 즉물적이거나 천박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문재(文才)를 드러낸다.

대자보나 일기를 쓰듯 감정을 배설하는 방식보다는 문학적 상징과 촘촘한 서사 구조 안에서 주제 의식을 구현한다.

문학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예술이라는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장편 '밤의 여행자들'이 동양인 최초로 영국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은 건 윤고은의 이러한 문학적 성취가 인류 보편성과 예술적 품격을 충족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혼보험은 안정된 결혼을 보장할까…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대거상 번역 부문 수상 이후 처음으로 펴내는 장편 '도서관 런웨이'는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자칫 진부해질 수도 있는 이 흔한 소재를 '결혼안심보험'이라는 기발한 도구를 들고 와 새롭게 버무려낸다.

결혼의 성립과 안정을 보험으로 보장하는 세상을 보여주며 결혼제도의 이면과 현대인의 사랑에 내포된 소비적 속성을 드러낸다.

단짝이었지만 남자 하나 때문에 소원해진 두 여성 안나와 유리. 도서관 런웨이를 사랑하는 안나는 어느 날 '#AS안심결혼보험' 약관집을 유리에게 소개해준 뒤 행방이 묘연해진다.

유리는 안나를 찾으려고 보험에 연관된 것들에 접근하고 과거 #AS보험회사의 직원이었다는 남자를 만나 호감을 느낀다.

이후 안나에게 다시 연락이 닿지만, 이 보험상품의 실체는 더 큰 미스터리로 다가온다.

결혼제도가 보험이라는 가장 자본주의적 시스템 중 하나에 편입되면 어떻게 될까? 보험에 가입하면 결혼 시 보장해주는 범위가 생기고 가입 만기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하면 환급금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입할까? 윤고은은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결혼이 정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지, 제도적 뒷받침이 사랑을 보장하는지, 이별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문학평론가 박신영은 "이 순간 미래를 위한 보험금 납입을 멈추고 이 결혼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물어야 될 때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서른여섯 번째 작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