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다. 상쾌한 피톤치드 기운이 몸 구석구석 스민다.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들이 만든 그늘도 시원하다. 삼나무 아래에는 고사리와 푸른 이끼까지 자라고 있어 마치 원시림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빨려들어갈 듯 깊고 짙은 삼나무숲…소슬한 바람이 더위를 밀어내네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예찬한 것처럼 숲에는 언제나 청량한 기운이 넘칩니다. 제주의 숲은 화산 지형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광과 울창한 원시림이 어우러져 이채로운 느낌을 줍니다. 사려니숲길 외에도 제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숲길이 꽤 많습니다. 한적하게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길부터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까지 토박이들만 아는 제주 숲길을 소개합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삼다수 숲길
빽빽한 삼나무 사이 이국적 풍경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의 삼다수숲길은 원래 지역 주민이 즐겨 찾는 산책로였다. 제주를 대표하는 생수인 삼다수 공장이 인근에 있지만 삼다수숲길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의외로 드물다. 원래 이 지역은 말을 풀어 기르는 방목터이자 사냥터여서 ‘테우리(말몰이꾼)’와 ‘사농바치(사냥꾼)’만 출입하던 곳이었다. 2010년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이 숲길을 정비해 ‘삼다수숲길’이란 이름을 붙여 개장했다.

삼다수 숲은 용암이 식은 땅 위에 형성됐다. 숲길 초입의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다. 삼나무들은 1970년대에 심은 것인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30m가 넘는 거목이 됐다.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상쾌한 피톤치드 기운이 몸 구석구석 스민다.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들이 만든 그늘도 시원하다. 삼나무 아래에는 고사리와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어 마치 원시림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삼다수 숲길은 언제나 한적한 분위기여서 오롯이 자신만 생각하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숲길은 3개 코스로 나뉜다. A코스 꽃길은 1.2㎞, B코스 테우리길은 5.2㎞, C코스 사농바치길은 8.2㎞다. A코스는 짧은 ‘맛보기용’ 산책로로 마을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인기있는 B코스에선 탐방로 옆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 C코스 사농바치길은 온전히 숲길을 다 걷는 코스다. 봄에는 복수초 군락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산수국, 가을에는 하천을 따라 물든 단풍을 볼 수 있다.

머체왓숲길
영화 '킹덤' 속 울창한 원시림

빨려들어갈 듯 깊고 짙은 삼나무숲…소슬한 바람이 더위를 밀어내네
서귀포시 한남리에 있는 머체왓숲길은 드넓은 목장 초원과 원시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머체는 돌이 엉기정기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 왓은 밭을 일컫는 제주어다. 머체왓은 ‘돌로 이뤄진 밭’이라는 뜻이다. 머체왓숲길은 최근 전지현이 주연한 영화 ‘킹덤’과 예능 ‘네바퀴집’ 등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제주 중산간의 울창한 원시림을 탐방할 수 있는 숲길은 날것 그대로의 제주 숲을 만나게 한다.

숲길 입구를 지나면 방목 중인 소들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구가 꺾인 출입구가 나온다. 한라산을 보며 초지를 가로지르면 잠시 뒤 어두컴컴한 숲길이 시작된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며 깊이 들어갈수록 울창한 활엽수가 펼쳐져 있다. 쌓인 돌 위로 짙은 이끼가 자라는 특이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머체왓숲길 외에 머체왓소롱콧길(6.3㎞), 서중천탐방로(7.0㎞) 등 3개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머체왓숲길 코스 중간 즈음에는 제방남기원쉼터가 있고, 전망대에서는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있다. 소롱콧길 코스 삼나무숲에는 40~50년 전 주민들이 실제 거주했던 머쳇골 옛집터도 볼 수 있다.

화순곶자왈생태탐방숲길
암석·가시덤불·야생식물 한눈에

빨려들어갈 듯 깊고 짙은 삼나무숲…소슬한 바람이 더위를 밀어내네
곶자왈은 제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지만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화순곶자왈생태탐방숲길은 의외로 덜 알려졌다. 화순생태탐방로는 곶자왈 생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곶자왈이란 제주 말로 ‘숲’을 의미하는 ‘곶’, 암석들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곳을 가리키는 ‘자왈’이 합쳐진 제주 방언이다. 곶자왈은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 지형으로 나무와 돌 따위가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제주의 독특한 숲을 의미한다. 돌과 바위를 비집고 태어난 나무들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자라났다.

탐방길을 걷다 보면 아열대 식물인 천량금, 주름고사리, 개톱날고사리 등 남방계 식물은 물론 한라산 고지대에서 서식하는 좀고사리와 골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도 볼 수 있다. 탐방로는 왕복 3.2㎞의 코스인데 가족끼리 탐방한다면 자연곶자왈길보다는 데크길이 조성된 송이산책로가 좋다. 걷다 보면 소나 말을 방목해 기르기 위해 쌓아 놓은 돌담인 ‘잣담’을 볼 수도 있고, 때로 방목 중인 소떼와 마주칠 수도 있다.

제주=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취재협조=제주관광공사(비짓제주 사이트에 가면 제주관광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