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파크 개인전 '사유의 경련'
눈을 안 그린 인물화…한국화가 김호석 "지우니 뜻 확장"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선비가 안경을 썼다.

흰 안경알 너머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 도통 어떤 인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수묵 인물화로 유명한 한국화가 김호석(64)의 작품 '사유의 경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성철 스님,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단종, 정약용, 김구, 안창호, 신채호 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그린 작가는 이름 모를 한 선비를 상상해 그리면서 눈을 그리지 않았다.

인물화에서 눈은 그 인물을 표현하는 핵심이지만, 작가는 눈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1577년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으로 눈을 가렸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사람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듯,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상상은 관람객의 몫이 된다.

오는 4일부터 김호석 개인전 '사유의 경련'이 열리는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아트파크 1층 전시 공간에는 이 작품 단 한 점만 걸렸다.

작가는 "인물화의 정점인 눈을 지우거나 비움으로써 그림의 전통을 새롭게 하고 뒤집는 혁신이자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이든 그림이든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훨씬 어렵다"라며 "하지만 그리지 않음으로써 뜻이 확장되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눈을 지우고 비움으로써 내 의도와 무관하게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눈부처''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은 2019년 완성됐고, 이미 판매됐다.

이 한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작가로서도 갤러리로서도 과감한 선택이다.

갤러리 2층에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네 개의 눈이 있는 '황희' 등 이 그림 이전에 작업한 인물화 5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작품을 여러 점 전시하면 문법과 맥락이 발생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1층에는 한 점만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눈을 그리지 않으니 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를 느끼게 할 수 있다"라며 "이 어려운 시국에 어떻게 인생을 살고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던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림은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지 못하는 코로나19 사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자신의 주장만 하는 불통의 시대를 꼬집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 작품을 보고 작가 주변의 각계 인사 14명이 자유롭게 쓴 글을 묶은 책 '이 그림 하나의 화론'도 출간된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으며, 올해 석재문화상을 받았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