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독서 경험을 누리는 공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공개한 '2019년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친 한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7.5권이었다.

2년 전과 비교해 1.9권 감소한 수치다.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하루 이용료가 5만원인 유료 도서관이 등장했다.

지난해 2월 청담동에 문을 연 문학도서관 '소전서림'이다.

[imazine] 도서관으로 떠나는 북캉스 ② 소전서림
◇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
영동대교 남단 청담자이아파트 바로 옆에는 흰 벽돌로 된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있다.

정육면체를 여러 개 이어 붙인 듯한 이 건물은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2016년 설계한 것이다.

WAP 문화재단이 갤러리 'WAP 아트스페이스'를 운영했던 이 공간이 리노베이션을 거쳐 문학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소전서림,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뜻이다.

공공 도서관과 달리 유료로 운영되는 이곳은 '집 밖의 내 서재'를 지향한다.

'세심하게 디자인된 공간에서, 특별하게 설계된 의자에 앉아, 전문가들이 엄선한 책을 읽으며, 책 읽는 경험의 최고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취향이 비슷한 문화 애호가들이 모여 담소와 토론을 나눌 수 있는 '문화 살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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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금싸라기 땅에 자리한 만큼 입장료는 만만치 않다.

하루 이용권은 5만원, 반일(5시간) 이용권은 3만원이다.

연회비(66만원)를 내면 입장료가 반값으로 할인된다.

정기적으로 미술 전시회를 열면서 하루 입장료를 받는 도쿄 롯본기 분키츠 서점이나 도쿄 모리타워의 멤버십 도서관 '아카데미 힐스'처럼 해외에는 유료로 운영되는 사립 도서관이 많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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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숲을 거닐다
1층의 카페 겸 바 '투바이투2×2'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도서관 메인홀이 나온다.

지하에 있지만, 높은 층고와 하얀빛이 쏟아지는 한지 질감의 벽면 덕분에 전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는 문학을 중심으로 철학과 인문학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열린책들의 김영준 편집이사, 안나푸르나 출판사의 김영훈 대표, 철학아카데미의 박정하 이사, 비평가 박혜진, 시인 서효인 등 각 분야 전문가 10인의 자문을 거쳐 선정된 책들이다.

주요 작품은 번역별로 여러 권의 판본을 갖추고 있다.

이미 절판되어 전문 북 컬렉터의 도움을 받아 구입한 것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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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서관을 표방하는 만큼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 2만5천권 중 문학 도서가 70%를 차지한다.

독특한 것은 제목 순으로 책을 정리해 놓은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작가 이름순으로 분류해 놨다는 점이다.

이용객 입장에서 훨씬 더 찾기 수월한 분류 방식인 듯하다.

신간·추천 도서와 세계 각국의 잡지를 따로 모아둔 서가도 눈길을 끈다.

문학부터 예술,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잡지 최신호가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도서관에 상주하는 북 도슨트에게 문의해 보자.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추천해 준다.

◇ 궁극의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
벽면을 둘러싼 책들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가구들이다.

핀 율, 칼한센앤선, 아르텍, 카시나, 프리츠한센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의자들로 공간이 채워져 있다.

"최상의 독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독서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동작인 '앉기'를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의자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정지은 팀장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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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시집 한 권을 꺼내 들고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정육면체 모양의 좌판이 움직이며 바른 자세로 앉도록 해주는 독특한 의자다.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지면 좌판이 앞으로 혹은 뒤로 기울어져 다시 정자세를 취하게 된다.

여기에 앉아 책을 읽으면 깜박 졸음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이스 체어'로 불리는 이 의자는 소전서림이 콜렉티브 디자인 그룹 'ar3'와 협업을 통해 만든 의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모양의 '구스 체어'와 야외 테라스에 놓인 '스윙 체어' 역시 'ar3'의 작품이다.

스윙 체어는 그네처럼 탈 수 있는 의자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게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책을 읽다 테라스로 나와 스윙 체어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다.

'리딩 체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이 세 가지 의자는 소전서림에만 있는 특별한 의자들이니 이곳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앉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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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독립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싶다면 '1인 서가'로 가면 된다.

칸막이로 나뉜 공간 안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다리를 뻗고 거의 누운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카시나의 LC4 체어가 특히 마음에 든다.

'1인 서가'에는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DVD로 볼 수 있는 상영석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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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선된 장서·가구와 함께 각각의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미술 작품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판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팀 아이텔의 '독서하는 화가', 리엄 길릭의 수식 시트 작업 'Process Friction Canopy Mirrored'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

심지어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기 위해 걸어둔 화장실 앞의 표식물조차 예술작품이다.

도서관 내 미술품은 모두 WAP재단의 소장품으로,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도서관에 걸린 미술품들이 궁금하다면 토요일 열리는 아트투어에 참여해 보자. 전문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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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소와 토론이 오가는 문화살롱
메인홀 옆에는 음악이 낮게 흐르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예술 서적만을 모아 따로 구성해 놓은 '예담'이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과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 퐁피두 센터 등 해외 유명 미술관의 최신 전시 도록을 모아놓은 '아트 나우' 코너가 눈길을 끈다.

도록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해외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곳에서는 한쪽에 비치된 커피와 차를 즐기며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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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책을 '듣고' 싶다면 중앙에 놓인 안마 의자에 앉아보자.
핸드폰 블루투스를 켜고 의자 옆에 놓인 책의 QR코드를 스캔한 뒤 오디오북을 재생시키면 안마의자에 설치된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지막한 오디오북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예담'은 소규모 공연이나 낭독회, 강연 등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WAP재단이 문학과 인문학을 후원하는 재단인 만큼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북클럽'과 인문학 강좌인 '소전 아카데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현재 서평가 이현우 씨가 진행하는 '로쟈의 한국문학'(매달 첫째 주 금요일)과 박상진 교수가 진행하는 '단테의 철학, 문학, 예술'(매주 화요일)이 소전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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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북클럽을 진행하는 정대건, 김유담, 박서련 작가는 소전서림이 지원하는 작가들이다.

소전서림은 매년 3명의 젊은 작가를 선정, 이곳에 상주하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박솔뫼·정지돈·천선란 등 세 작가가 도서관을 소재로 쓴 단편을 모아 '흰소설전'이라는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소전서림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책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유통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메인홀부터 1인 서가, 예담, 장르 소설을 모아놓은 '캣워크', 소규모 모임을 위한 '하오재'까지 공간을 하나하나 둘러보니 처음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입장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용자들이 더욱 쾌적한 독서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하루 입장객은 40명으로 제한된다고 한다.

[imazine] 도서관으로 떠나는 북캉스 ② 소전서림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