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약탈' 번역 출간

'기본 소득' 논의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가이 스탠딩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교수가 쓴 '공유지의 약탈'(창비)이 번역돼 출간됐다.

공유지란 선조부터 물려받은 자연적·물리적 환경을 포함해 우리가 공유하는 공적 부(富)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특허와 저작권, 사회 기반시설, 인터넷과 방송 전파 같은 무형 자산까지 포괄한다.

저자는 오늘날 땅·공기·물 같은 자연부터 도로·교통·치안 같은 사회제도, 문화 전통과 개인정보까지 우리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공유지 약탈'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약탈의 주체는 거대 자본이다.

영국 보수당 대처 정부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를 계승하면서 영국에서 공유지 약탈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공유지 약탈은 어떻게 불평등을 낳는가
우선, 정부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설립한 병원 재단들은 서비스 질을 떨어뜨렸다.

인력 부족에 따른 의료진의 과로는 환자 사망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에 해당하는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더는 국립화된 공공서비스라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또한, 노인 돌봄·우편·대중교통 서비스에서도 이 같은 '약탈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개인 정보 영역도 국가가 아닌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빅 테크 기업에 실질적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는 급성신부전을 예측하고 발견하는 앱을 만드는데 1천600만 명 환자에 대한 NHS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환자들에게 개인정보 활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저자는 "(영국)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 및 그 뒤의 보수당 정부들은 '긴축'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공유지의 사유화와 강탈을 가속화했다"며 "이는 사회의 가치 절하를 심화하고 불평등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처럼 거대자본의 영향력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공유지의 상업적 이용과 개발에 대한 부담금을 주 원천으로 하는 '공유지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다.

크게 석유·천연가스·광물처럼 고갈되는 자원, 숲과 같이 보충할 수 있는 공유지, 공기·물처럼 고갈되지 않는 공유지로 나누어 그 성격에 따라 부담금을 달리 적용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공유지 이용에 대해 부과하는 부담금으로 공유지 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을 모두에게 공유지 배당을 하는 데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안효상 옮김. 504쪽. 3만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