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쓴 채 광장에 나와 선 남자가 있다.

그는 궂은 날이든 해 뜬 날이든 하루도 빠짐없이 이런 행동을 계속한다.

그는 무엇을 기다리며 이러는 걸까.

동네 사람들로부터 기인 취급 받는 그는 '우산씨'로 불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런 우산씨에게 관심을 주고 따뜻하게 대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가출한 어머니와 어머니를 찾아 나선 아버지 대신 청소년기부터 생계를 책임지고 가업인 장갑 공장일에 청춘을 바치고 있는 '해주'이다.

그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공장 생활이 쳇바퀴처럼 이어지는 데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던 어느 날 우산씨가 곁으로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면서 해주는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해주는 그날 이후 우산씨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면서 그와의 거리를 좁히기로 한다.

매일 고된 일에 시달리는 데다 기댈 곳도 없는 해주에게 우산씨는 어떤 것도 이해해줄 듯한 구원자 같은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산씨는 해주가 무슨 말을 해도 공감하고 지지해준다.

이렇게 상처 입고 외로운 두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가 시작된다.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개성 있는 서사를 구축해온 장은진의 신작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문학동네 펴냄)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다.

지친 여자와 우산 쓴 남자의 사랑…소설 '날씨와 사랑'
메마른 사막 같은 이들의 일상은 둘 사이에서 조용하고 은근하게 교차하는 두근거리는 감정과 설레는 언어를 통해 조금씩 촉촉함을 되찾아간다.

여기에 삼각관계가 추가되면서 소설 속 로맨스는 더욱 풍성해진다.

해주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좋아해 왔던 동네 오빠 '재하'가 우산씨와 해주 사이에 뛰어들어 숨겼던 감정을 표현한다.

재하 역시 상처받고 고단한 영혼이다.

목공방 가업을 잇기 위해 꿈을 포기했으나 미련이 그를 괴롭히고, 낡은 집은 해주네 집과 함께 철거 위기에 놓였다.

지치고 불행하고 외로운 세 청춘은 자기 몫의 고난이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적당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힘겨움을 받아들이고, 알 듯 말 듯 은밀하게 오가는 사랑의 감정에서 샘솟는 힘의 기운을 받아 불행한 한 시절을 함께 뚫고 나간다.

상처 입은 젊은 세 영혼이 뜨거운 여름 한때를 통과하며 이어가는 삼각관계는 어떤 결말로 끝날까.

장은진은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2년 등단했다.

장편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소설집 '키친 실험실', '당신의 외진 곳'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