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구미호, 일본에 오니가 있다면 서양에서 가장 사랑받는 호러 캐릭터로는 단연 뱀파이어를 꼽는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뱀파이어를 다룬 소설과 영화, 만화가 오랜 시간 끊임없이 쏟아질 만큼 서양 문화 콘텐츠에 없어선 안 될 감초 같은 소재였다.

피를 빨아 영생을 누리고 어둠에서만 활동하는 뱀파이어의 생태는 공포와 신비감을 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해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는 묘한 판타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또 대부분 귀족이나 부호 출신 남성으로 설정되는 뱀파이어 캐릭터가 미녀의 목을 물어 피를 빠는 정형화한 모습은 문학적 에로티시즘을 잘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돼왔다.

국내 과학소설(SF) 기대주로 주목받는 천선란은 이처럼 서양을 대표하는 흡혈귀를 우리나라로 소환했다.

신작 장편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안전가옥 펴냄)를 통해서다.

천선란이 창조한 뱀파이어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뱀파이어 로맨스'를 표방하는 이 소설에서 고독한 여성들은 뱀파이어를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특히 이 뱀파이어가 외로운 사람들의 피 냄새를 맡고 그들을 찾아 헤맨다는 설정이 눈에 띈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다른 종이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뱀파이어는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인 동시에 길고 긴 시간을 외롭게 버텨야 한다는 점에서 고독의 상징이자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한국형 뱀파이어는 로맨티스트…천선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재개발을 앞둔 구시가지 재활병원에서 일어나는 연쇄 자살 사건은 아무리 봐도 미심쩍다.

이를 수사하던 형사 수연은 현장에서 '뱀파이어 헌터' 완다를 만나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자살이 아니라 뱀파이어의 소행이며, 앞으로 희생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난주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허덕대며 고단한 삶에 절망한다.

어느 날 나타난 뱀파이어는 구원을 약속하며 손을 내밀고, 난주는 그의 손을 잡고 싶어 한다.

수연과 완다, 난주는 각각 홀로 모든 걸 감당하는 외로운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연은 고독에 무감각해진 상태이고, 완다는 외국에 입양된 외로운 이방인이며, 난주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뱀파이어는 세 여인에게서 풍기는 '외로운 피' 냄새를 맡고 찾아와 그들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그들에게 찾아온 뱀파이어는 구원일까, 저주일까.

천선란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 SF어워드 2020 장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장편 '천개의 파랑', '어떤 물질의 사랑'으로 주목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