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책임 두고 기관 간 갈등 양상…전문가 "분리 운영으로 안전성 위협"

탈선사고 부상자 발생 언제 알았나…SR-코레일 '진실 게임'
지난해 호남고속철도 광주 차량 기지에서 발생한 수서고속철(SRT) 열차 탈선 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보고 책임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고를 낸 SRT 운영사인 SR과 사고 발생 구간을 담당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25일 국토교통부와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2일 오전 0시 25분께 호남철도차량정비단 내 시험선에서 시험 운전 중인 SRT 고속열차가 차단 시설을 들이받고 궤도를 이탈했다.

당시 사고 기관사는 제한속도를 시속 31㎞가량 초과한 시속 91㎞로 열차를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코레일 소속 차량관리원 3명이 다치고 32억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코레일과 SR의 초동 보고에서는 이런 내용이 국토부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한 기사가 보도되자 SR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호남철도차량정비단에서 발생한 사고의 최초 보고 의무자는 코레일"이라며 "SR은 코레일이 국토교통부에 보고한 내용을 전달받아 즉시 관련 기관에 재차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의 '철도사고 등의 보고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사고 발생 구간을 관리하는 철도운영자'인 코레일에 초동사고 보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코레일도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코레일은 관련법과 규정에 따라 국토부에 즉각 초동보고 및 관련 기관에 통보를 시행했다"며 "부상자(3명) 현황에 대해 SR에 통보했고 산재 처리도 정상적으로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상자 발생 사실을 언제 파악했느냐를 두고 두 기관의 해명은 엇갈렸다.

SR은 해명 자료에서 "사고 발생 이후 국토부 철도안전감독관, 코레일 및 SR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당시 부상자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후 부상자에 대한 관련 내용은 철도경찰 조사 시(2020.10.26) 처음 통보받아 알게 됐다.

코레일 직원 부상자는 코레일에서 조치 및 보고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지난해 5월 21일 공생안전보건협의회에서 SR 측에 부상자 발생 사실을 전달했고, 그 이전에도 공문 성격은 아니지만, 전화상으로 SR 측에 부상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렸다"고 반박했다.

SR의 설명에 따르면 사고 직후 국토부 철도안전감독관이 현장을 방문했으나 부상자 발생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당시 조사가 허술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 발생 후 약 3시간 뒤 철도안전감독관이 현장을 점검한 것은 맞다"라면서 "당시 현장에서 부상자 발생 상황을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부상자가 있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부상자들은 사고 직후 일단 귀가한 뒤에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 발생과 보고 체계의 혼선을 두고서 고속철도 분리 운영이 낳은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SR은 차량 정비, 역 운영, 시설유지보수, 관제 등 대부분 필수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는데, 이처럼 어정쩡한 분할 구도로 인해 안전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병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철도구조개혁 15년 성과와 발전 방향' 보고서에서 "안전 관리 주체 이원화로 위험성이 증대되고, 특히 사고·장애 등 이례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조치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SRT 전용 노선에서 사고·장애 시 SR이 사고대책본부를 총괄 지휘하나, 실제 사고복구는 코레일이 담당해 지휘계통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결국 고속철도가 코레일과 SR 두 기관으로 분리 운영됨에 따라 안전관리 주체도 이원화되고 기관 간 소통·정보 교환에도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 하는 방향으로 코레일과 SR 간 통합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탈선 사고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SR은 더는 '무사고' 기록을 내세우긴 어렵게 됐다.

SR은 지난해 12월 개통 4주년을 맞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SRT는 개통 이후 철도 안전의 기준을 새로 써나가고 있다.

99.97%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정시율 달성과 절대 안전을 최우선 핵심 가치로 사고율 '제로(Zero)'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