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 둘째 날 리뷰
노부스 콰르텟, 용감하고 진실하게 쇼스타코비치를 드러내다
네 사람의 연주자들은 그야말로 음악 속으로 달려들었다.

부서지라고 돌진했다.

주저 없이 연주의 한계선을 시험하며 악기의 한계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사중주 10번의 4악장에서 제1바이올린 김영욱의 현 하나가 끊어졌을 때 관객들은 이 음악이 인간의 것임을 일순간 깨달았고, 그들의 악기 또한 강철로 된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나무임을 알게 됐다.

그토록 처절하게 투쟁하던 그가 실은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진실이 돌발상황으로 인해 폭로된 것이다.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르는 인간의 생명이 전쟁과 폭압, 부자유와 함정의 위험이 만연한 불의의 시대를 꿰뚫고 지나간다.

불안의 정적을 고요한 내면의 울림으로 바꿔내고, 격렬한 공격성을 그로테스크한 춤곡 리듬으로 녹여내며 음악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단번에 죽음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욱의 현이 툭 끊어져 버렸듯이 말이다.

노부스 콰르텟이 전해준 이 음악은 그만큼 격렬한 생명의 몸부림을 담고 있었고, 또한 그런 만큼이나 '죽음'에 가까이 근접해 있었다.

노부스 콰르텟, 용감하고 진실하게 쇼스타코비치를 드러내다
이번 노부스 콰르텟의 쇼스타코비치 현악 사중주 전곡 연주는 여러 가지로 대단한 도전이다.

지난 16일부터 오는 19일까지 나흘에 걸쳐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이 소련 작곡가의 걸작 사중주 열다섯 곡을 모두 완주한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전곡을 선보이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물론 기교 면에서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연주자가 감당하는 정신적 무게다.

연주자들 자신도 쇼스타코비치의 불안, 고독, 공포, 긴장감을 똑같이 '겪으며' 예술적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이 밀도 높은 작품을 불과 나흘 만에 완주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노부스 콰르텟은 이 어려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전체 시리즈의 두 번째 날인 17일 공연에서도 노부스 콰르텟은 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쇼스타코비치를 마주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1부 첫 곡 현악 사중주 6번은 참혹한 시기를 깨고 나온 밝음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스탈린 시대의 트라우마와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는다.

노부스 콰르텟은 이런 미묘한 음영의 변화를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포착해냈다.

첫 악장의 천진한 '동요풍' 선율이나 2악장 모데라토의 움직임 등은 눈에 띄게 밝지만, 3악장의 내면적 침잠이나, 4악장 말미의 고요가 충분한 호흡으로 표현돼 이 밝음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들려주었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사중주 8번은 전체 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고, 연주 효과도 뛰어난 작품이다.

전체 다섯 악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고, 각 악장 사이의 대조 효과, 다채로운 주법의 표현력이 마치 영화처럼 듣는 이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가 전곡 연주임을 잘 이해하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은 6번에 비해 8번을 훨씬 외향적으로, 거의 교향악적인 효과를 의도해 연주했다.

작곡가 자신을 나타내는 'DSCH'(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약자를 레-미플랫-도-시의 네 개 음으로 나타낸 것)의 주제가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낸 가운데, 특히 2악장 시작 부분의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거친 음색은 유대 선율의 민속성과 고삐 풀린 듯한 광기를 동시에 탁월하게 재현해 주었다.

3악장의 반어적인 유머와 춤곡 리듬의 유연함도 앞의 악장과 은근한 대조를 불러일으키며 듣는 이를 사로잡았다.

예고 없이 들려오는 4악장 두드림의 모티브는 그야말로 광포하게 표현되었다.

스탈린의 숙청 시대에 비밀경찰은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끌어갔다.

이처럼 노부스 콰르텟은 다채로운 개별 표현 하나하나에 혼을 실었다.

그저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차원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작곡가의 정신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훌륭하게 전해 준 것이다.

노부스 콰르텟, 용감하고 진실하게 쇼스타코비치를 드러내다
2부에서도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는 빛났다.

10번에서는 작품 특유의 유머에서 우아함으로 넘어가는 섬세한 뉘앙스 변화를 인상적으로 드러냈고, 특히 격렬한 2악장에서는 1, 2바이올린 대 비올라, 첼로 간의 음향적 균형감, 리듬의 역동성, '날이 살아있는 보잉' 등이 돋보였다.

8번에 비해 절제미와 유희성이 강한 작품의 개성이 훌륭하게 표현된 연주였다.

마지막 곡 12번의 장대한 마지막 악장은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거의 20여 분에 이르는 대곡 안에서 전체를 구축해가는 노부스 콰르텟의 시야와 너른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유머와 불안이 공존하던 첫 부분, 내면의 침잠을 말하는 둘째 부분, 불안이 정화되는 마지막 부분으로 진행되는 음악적 과정이 개성 있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

노부스 콰르텟이 이 시리즈에 기울인 노력이 여기 다 들어 있었다.

이번 시리즈는 국내 실내악 공연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관객들은 연주자와 함께 견디고, 힘겨워하며, 예술가의 고통스럽고 진실한 기록을 체험했다.

감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서는 진지한 음악의 가치를 관객들은 노부스를 통해 배우고 있다.

연주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휘청거리며 퇴장하는 네 명의 연주자. 그들은 진실한 쇼스타코비치를 용감하게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