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안드레아 보첼리 유튜브 채널.

1000곡을 쓰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리 성실한 천재 작곡가라 해도 노년에 이르러서야 달성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31년이란 짧은 생애 동안 1100여곡을 남긴 인물이 있습니다. 비운의 천재 음악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입니다.

과거 천재 음악가들 중엔 요절한 사람들이 꽤 많은데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35세, 조르쥬 비제는 37세, 펠릭스 멘델스존은 38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두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슈베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더욱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했습니다. 모차르트도 35년의 인생에 600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겨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 했는데요. 슈베르트는 모차르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곡을 쓴 것이죠.

단지 양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송어' '마왕' '겨울 나그네' '아베 마리아' '백조의 노래' 등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생전엔 그 자신보다 슈베르트를 더 알리고 싶어 했던 '팬클럽' 같은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죠. 나아가 그는 세기의 천재들이 인정한 천재 음악가였습니다. 짧디 짧은, 그러나 찬란히 빛났던 슈베르트의 삶과 작품 세계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김희경의 7과 3의 예술]'겨울 나그네'는 곧 슈베르트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슈베르트는 평생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그는 14명의 자녀 중 12번째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지만, 당시엔 보수가 매우 적어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한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 아버지와 형들의 실력을 뛰어넘었고, 10살이 되던 해부턴 작곡도 했습니다.

이후 슈베르트는 빈의 궁정예배당의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천재 음악가 한 명과 마주하게 됩니다. 슈베르트는 평생 음악사에 길이 남은 천재 음악가 두 명을 만났는데요. 그중 한 인물은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경쟁자이자,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입니다. 빈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에게 개인 교습을 해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슈베르트의 실력도 나날이 늘었죠.

그렇게 슈베르트는 음악가가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아버지는 슈베르트가 자신처럼 교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죠. 슈베르트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많이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교직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작곡을 이어갔습니다.

1818년 슈베르트는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가 21살이었는데요. 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매달렸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악상이 떠오르면, 메뉴판에 곡을 쓸 정도였죠.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을 가진 모임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을 가진 모임 '슈베르티아데'.

그를 응원하는 '슈베르티아데'란 모임도 큰 힘이 됐습니다. 모임명은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입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을 비롯해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밤마다 모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죠. 이들은 슈베르트의 음악을 함께 듣고, 작품들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의 팬클럽이자 살롱 모임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작품들 중 많은 곡이 사랑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주로 가곡 위주로 알려졌는데요. 슈베르트 스스로도 가곡을 좋아했고, 많이 만들었습니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작품 중 600여 곡이 가곡이니, 진정한 '가곡의 왕'이라 불릴만하죠.

가곡은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입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슈베르트는 시를 좋아했으며, 시를 읽거나 들으면 곧장 악상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슈베르트 이전엔 가곡이 음악 시장에서 크게 각광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름다운 가곡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가곡도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네요.

슈베르트가 만든 가곡의 세계는 넓고도 깊습니다. '송어'와 같은 가볍고 유쾌한 곡부터 우아하면서도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작품까지 다양합니다. 슈베르트는 특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를 좋아해, 괴테의 작품으로 '마왕' '프로메테우스' 등 60여 곡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 도나토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안녕히 주무세요'./워너 클래식 유튜브 채널

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는 곡입니다. 연가곡은 크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가곡 모음을 이르는데요. 총 24곡으로 구성된 '겨울 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 먼 길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곡 '안녕히 주무세요'는 독백처럼 연인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며 시작됩니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난다. 5월은 아름다웠네…지나는 길에 너의 집 문 앞에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적으리라. 얼마나 널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도록."

작품 속 주인공은 겨울 들판을 헤매며 점점 깊은 고통과 절망에 빠져듭니다. 그러다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 이르러선 손풍금을 돌리는 늙은 악사를 발견하고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주인공은 노인에게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곡은 끝이 납니다. "그의 작은 접시는 빈 채로 있다. 누구 하나 들으려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다…노인이여,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완성한 불후의 명작이죠.

그해 슈베르트는 평소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던 천재 음악가 한 명을 만나게 됩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이들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뒤늦게서야 만났습니다. 베토벤은 자신을 찾아온 슈베르트에게 '빛나는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죠. 베토벤의 극찬을 받은 슈베르트의 기분은 날아갈 만큼 기뻤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그의 관을 직접 들며 깊이 애도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이 떠난 지 1년 후, 슈베르트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음악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연주회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죠.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그해 11월, 슈베르트는 돌연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설들이 있습니다. 장티푸스, 매독, 수은 중독 등 많은 얘기가 나왔죠. 하지만 정확한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슈베르트의 유해는 베토벤의 묘 근처에 안장됐는데요. 그의 형이 슈베르트를 위해 베토벤의 옆에 묻어주자고 제안했던 덕분입니다. 비운의 천재 음악가 두 명이 하늘에서 만나 즐겁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떠오릅니다. 이방인으로 와서 고독한 이방인으로 떠난, 그러다 나이 많은 악사를 만나 또 다른 여정을 함께 시작한 나그네. 그가 곧 슈베르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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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7과 3의 예술]'겨울 나그네'는 곧 슈베르트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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