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변호사의 탐색서 '역사의 법정에 선 법'

15만원을 훔친 사람에게는 실형, 1천500억원을 횡령한 사람에게는 집행유예가 버젓이 선고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동일한 과오를 범한 처벌에서 소득 격차가 엄청난 두 사람에게 같은 벌금이 부과된다면 과연 온당하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실질적인 형벌 불평등이 '가난'을 처벌하는 우리의 현주소다.

상후하박(上厚下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처럼 강자와 부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와 빈자에게는 엄혹하다.

억강부약(抑强扶弱)과는 정반대다.

인간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 법을 벗어나 살 수는 없다.

법이 국가나 민족의 분쟁을 해결하고, 생명권·평등권 같은 인간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여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법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법의 민낯이 드러나곤 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법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법은 늘 심판하는 입장이었을 뿐 심판대에 선 적이 없었다.

죄 없는 사람을 심판하고, 양심과 정의를 단죄하기도 했다.

검사 출신의 김희수 변호사는 신간 '역사의 법정에 선 법'을 통해 왜곡돼온 법의 역사를 법률사적·법철학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마치 법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여겼던 한국 근현대사의 오류를 되짚으며 역사의 법정을 현실의 법정으로 소환해낸다.

나아가 돈과 권력으로 점점 무력해지는 법치주의 앞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든 사안을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으로 이분화해 판단할 수밖에 없는 법의 숙명 앞에서 다른 대안은 없는지, 진정한 의미의 법과 정의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성찰한다.

김 변호사는 오랜 시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밝혀 무죄와 배상을 이끌어내는 등 법 앞에서 소외된 이들을 지원해왔다.

그런 그에게 법은 늘 고민과 의문의 대상이었다.

힘이 곧 법이 되고 법이 곧 힘인 세상, 정의를 잃은 법의 실상을 수없이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향한 고발장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책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법이 어떻게 남용됐고, 어떤 논리가 정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됐으며, 힘 있는 자들의 주장은 무엇이었지 등을 법의 잣대로 되짚어본다.

제1부 '역사의 법정' 편에서는 1895년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해체된 1949년까지의 기간을 다룬다.

대외적 영토 확장과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제국주의가 지구촌을 휩쓸 때였다.

그 중심에 있던 일본은 자유와 평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근대법을 철저히 무시한 채 소위 문명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지배를 합법화했다.

책은 그런 논리가 왜 법의 관점에서 명백한 범죄행위인지, 더 나아가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미완의 식민지 청산 역사까지 다각도로 살핀다.

제2부 '법이 공정하다는 착각' 편에서는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이 이뤄진 1950년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잇따라 헌법 개정을 강행한 1960년대 이후는 물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갖가지 형벌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한다.

권력을 동원해 헌법을 파괴하고, 악법을 양산해 인권을 유린하며,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 이론을 구체적 사례들과 함께 분석하는 것. 이어 에필로그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미래의 법이 어떻게 변화할지 논의를 확대해간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가 주목한 사실은 헌법이 눈물을 흘릴 때 '헌법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헌법의 꿈'을 지킨 주체는 언제나 국민이었다는 점이다.

동학농민혁명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항했고, 독립운동을 통해 외세의 침탈에 항거했으며,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순간에 항쟁과 집회로 이를 지켜냈다.

국민의 정신은 권력자와 법이 타락할수록 더욱 힘차게 불타올랐다.

법 앞에 잊히는 정의를 옹호하고자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는 지적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법률가와 깨어 있는 시민이 법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근대의 출발점인 동학농민혁명부터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19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주요 사건을 법의 시선으로 훑어보며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김영사. 292쪽. 1만4천800원.
근현대사 주요 사건과 판결로 살펴본 법과 정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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