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실 풍자한 부조리극 '굴뚝을 기다리며'
굴뚝 위 노동자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나
높이 70m 굴뚝 위에 누누와 나나가 있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굴뚝을 기다리고 있다.

절뚝거리며 굴뚝을 따라 걷는 둘은 말싸움을 하다 이내 화해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하염없이 굴뚝을 기다리는 이들 앞에 노동자 '청소', 굴뚝 청소 로봇 '미소', 소녀 라이더 '이소'가 차례로 찾아온다.

과연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굴뚝은 만날 수 있을까.

극단 고래의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는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원작의 '고도를 기다린다'는 모티브만을 차용해 굴뚝 위 노동자들을 이야기한다.

10일 오후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이해성 작·연출(극단 고래 공동대표)은 "2018년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 15일간 연대 단식을 할 때 굴뚝을 보면 그곳이 우주 속 별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했고,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작품의 제작 이유를 밝혔다.

극 중에서 누누와 나나는 자신이나 상대의 이름이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굴뚝에서 오래 생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굴뚝 아래 세상에서도 잊힐까 두려워한다.

이 연출은 1년 이상 지속된 고공농성에는 노동자 개인의 복직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투쟁 방식에 대한 재고의 순간이 있어야 하고,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굴뚝 위 노동자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나
작품에는 세 가지 노동 형태를 보여주는 세 캐릭터가 등장한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를 상징하는 '청소'는 정화의 가치를 보여준다.

'미소'는 기계로 대체되는 인간 노동 문제를 엿보게 하고, '이소'는 현재 청년 세대의 노동을 대변한다.

극 중 청소 로봇 미소는 "청소 아저씨는 이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아주 안전하게 된 거죠. 굴뚝 청소는 아주 위험한 일이라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청소 아저씨 대신 저 미소가 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이 연출은 특히 이소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겪은 가장 큰 혁명이었던 '미투'를 안고 있는 캐릭터이자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깨뜨려 나가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공연에서는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가 내내 이어진다.

하지만 마냥 가볍게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안에는 노동의 현실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 연출은 "사람들은 노동운동을 노조를 중심으로 소수의 사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면서 "거부감 없이 노동문제를 받아들이고 사유할 수 있도록 예술인들이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공연은 27일까지.
굴뚝 위 노동자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