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팀, 7차 발굴조사서 명문와 등 유물 분석 결과 발표

경기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있는 당성(唐城) 유적지가 삼국시대부터 고려 중반까지 행정과 대중국 교역의 거점으로 활용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유물이 추가로 발견됐다.

"화성 당성은 삼국∼고려시대 행정·교역의 거점"
화성시는 11일 당성 7차 정밀 발굴조사 결과 보고회를 통해 명문와(글씨가 적힌 기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 등을 다량 발굴했다고 밝혔다.

발굴조사를 담당한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이번에 출토된 유물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부터 고려 시대 초중반까지의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임신(壬申)', '무인(戊寅)', '병오(丙午)' 등 시점이 적힌 기와와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의 하나로 686년 설치돼 757년 웅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된 '웅천주(熊川州)'명 기와가 출토된 점을 꼽았다.

"화성 당성은 삼국∼고려시대 행정·교역의 거점"
또한 신라 핵심 세력인 6부 관청 중 '본피모(本彼謀)'와 '양모(梁謀)' 명 기와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당시 당성이 중요 행정기관의 역할을 했고, '백사(白寺)' 등이 새겨진 기와가 함께 발굴된 것은 행정 기관에서 사찰로 역할이 변화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발굴팀은 설명했다.

특히 발굴팀은 중국의 가마터인 형요(邢窯)·정요(定窯)에서 제작된 백자편과 월주요(越州窯)의 청자 편이 출토된 것은 당성이 중국과의 교류 거점으로 활용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 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며 "당성은 행정·교역의 중요 기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