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인전 '회천' 개막
"막장은 서울에도 있다"…'광부화가' 황재형의 일침
"광부들의 삶을 그냥 소재로 가져간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 구경꾼,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광산으로 갔어요.

"
1982년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황재형(69)은 대학 시절 민중미술 소그룹 '임술년'으로 활동하면서 그린 '황지330'(1981)으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았다.

높이 2m가 넘는 캔버스에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낡은 작업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른 나이에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그는 1982년 가을 강원도로 갔다.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3년간 광부로 일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탄광촌의 노동자들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결막염이 심해져 광부를 그만둔 후에도 강원도에 남아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을 벌이며 작업을 계속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개막한 황재형 개인전 '회천(回天)'은 '광부화가'로 알려진 황재형이 쌓아온 예술세계를 조망한다.

'광부화가'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황지330'과 통리재를 배경으로 10년에 걸쳐 완성한 '백두대간' 등 대표작들과 대형 신작 설치작품까지 65점을 소개한다.

황재형은 광부로 일한 1980년대 현실 참여적인 민중미술 작품들을 발표했다.

1990년대에는 쇠락한 폐광촌과 강원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고, 2010년 이후에는 머리카락과 흑연을 활용해 탄광촌 인물과 동시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선보여왔다.

"막장은 서울에도 있다"…'광부화가' 황재형의 일침
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과시욕에 들떠 상이나 바라면서 작품을 했던 것 아닌가 반성하며 탄광으로 갔다"라며 "그러나 단지 그분들을 소재로 광부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그리려 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분들을 통해 미래를 향한 것을 얻고자 했다"라며 "예술은 단순히 자기 과시가 아니라 진정한 미래를 향한 지도여야 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이 시대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리얼리즘 시각으로 자신의 경험을 옮긴 작품에는 탄광촌의 삶이 생생히 묻어난다.

'식사'(1985)는 갱도 내의 점심을 묘사한 작품이다.

깜깜한 갱도에서 동료 머리에 달린 헤드랜턴에 의지해 석탄 가루가 내려앉은 도시락을 먹은 시간이 바탕이 됐다.

'작은 탄천의 노을'(2008)은 폐광이 한창이던 당시 자신의 터전이었던 탄광촌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린 작품이다.

탄가루와 오물이 섞여 흐르는 사북의 탄천 위로 황금빛 노을이 비치는 광경이 양면적인 감정을 나타낸다.

황재형은 자신의 말처럼 작품에서 단순히 탄광촌의 척박한 현실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막장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라며 탄광촌의 삶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전시 제목의 '회천'은 '천자나 제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다', '형세나 국면을 바꾸어 쇠퇴한 세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다.

작가는 "'하늘을 돌린다'는 회천은 이런 식으로 가지 말고 행복하게 잘살자는 뜻"이라며 "물질적인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8월 22일까지.
"막장은 서울에도 있다"…'광부화가' 황재형의 일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