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대표적 범죄 파헤친 논픽션 '세이 나씽' 번역 출간

1972년 12월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자식 10명을 홀로 키우던 38살 진 맥콘빌의 집에 복면을 쓴 패거리가 들이닥쳤다.

이들은 벌벌 떠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맥콘빌을 끌고 나가 밴에 태우고 사라졌다.

고아원 등에서 자란 맥콘빌의 자녀들은 실종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다.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납치, 살인 사건은 북아일랜드 무장세력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대표적 범죄로 꼽힌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패트릭 라든 키프가 쓴 '세이 나씽'(꾸리에 펴냄, 원제 : Say Nothing)은 맥콘빌 피살 사건을 추적하며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풀어낸다.

반세기 전 살인사건 추적으로 풀어낸 북아일랜드 폭력의 역사
IRA는 1999년 맥콘빌을 살해했다고 인정했지만, 총을 쏜 범인이 누구인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다.

저자는 맥콘빌과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체포됐던 북아일랜드 정당 신페인의 게리 애덤스 당수, 살해에 가담했던 IRA의 특수 조직 '무명자들'(The Unknowns)의 대원 돌러스 프라이스와 브렌든 휴즈 등 네 명을 중심으로 반세기 동안 봉인된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책에는 이 용의자들의 일대기와 1960년대 후반부터 벨파스트 평화협정(성금요일 협정)이 체결된 1998년까지 북아일랜드 분쟁의 연대기가 교차하면서 폭력의 역사가 직조된다.

4년에 걸친 조사, 일곱 차례의 북아일랜드 방문,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치밀한 범죄 소설 같으면서도 정치적 동기에 의한 범죄에 대한 참혹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맥콘빌 피살 사건은 그해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497건의 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벨파스트는 무장세력 조직과 영국군 병사들이 밤마다 정전의 암흑 속에서 충돌하던 무법 도시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가톨릭) 세력과 영국 잔류를 요구하는 연방주의자(개신교) 세력 간의 투쟁이 극심했다.

IRA는 범행을 자인하면서도 맥콘빌이 '영국군 첩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납치되기 얼마 전 총격전으로 다쳐 현관 밖에 쓰러졌던 영국군 병사에게 베개를 갖다주고 기도문을 읊은 것이 전부였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몇 푼 안 되는 연금으로 직업도 없이 자식 10명을 돌봐야 했던 그가 첩자였을 리는 만무했다.

책 제목처럼 IRA 관련자들은 진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방대한 탐사 끝에 돌러스 프라이스의 동생 마리안 프라이스가 진범이라고 믿게 된다.

책을 펴내기 전 마리안의 변호사에게 맥콘빌에 총을 쏜 사람이 마리안이라는 근거들을 설명하며 부인할 것인지 묻는 편지를 보냈는데 결국 답장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무혐의로 풀려난 애덤스의 무죄 주장이 왜 거짓으로 들리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애덤스에 대한 기소 의견서이기도 하다.

책은 IRA가 수십 년 동안 전쟁을 벌였지만, 영국을 북아일랜드에서 몰아내는 데 조금도 근접하지 못했고, 아일랜드 통일이라는 대의로 무장투쟁을 벌였을지라도 폭력을 변명하지 못함도 보여준다.

오랜 분쟁의 아픔에도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연방주의자 정당과 민족주의자 정당이 공동정권을 꾸려 왔지만, '신(新) IRA' 등의 조직이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켜왔다.

벨파스트에서는 지난주에도 연방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젊은이들 간 충돌이 이어졌고, 폭력 시위로 물대포까지 등장했다.

반세기 전 살인사건 추적으로 풀어낸 북아일랜드 폭력의 역사
지은현 옮김. 588쪽. 2만4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