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백신여권 도입을 추진한다. 17일 교도통신과 니혼게이자이, 재팬타임즈 등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 대한 인증서 발급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백신여권 도입에 부정적이던 일본 정부가 한 달여 만에 입장을 바꾼 건 유럽, 미국 등 백신여권을 도입 중인 국가들의 압박때문이라고 매체들은 전했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규제개혁담당상(사진)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국제사회의 요청이 있다면 접종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했다. 백신여권을 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미 정부 내부에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해석이다. 고노 담당상은 "해외에서 안전한 여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백신여권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백신여권을 도입하더라도 대상과 범위는 국제여행으로 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노 담당상은 백신여권 도입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1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국내용 접종 증명서 발급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백신 원격 관리시스템을 통해 개인별 접종 여부를 판단하고 인증서를 발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내각은 그동안 백신여권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본 내 백신 접종을 총괄하고 있는 고노 담당상은 지난달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 백신은 접종자 감염 예방 효과가 있지만 전파를 방지하는 효과는 없다"며 백신여권을 도입할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외 출국자에 한해 접종 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면역계 과민반응(알레르기)처럼 체질상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백신 접종여부로 활동을 제약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백신여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신중한 입장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고 매체들은 분석했다. WHO는 최근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 백신 효과의 지속기간이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분간 백신여권 도입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다무라 노리히사 후생노동상은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본인의 판단할 문제로, 정부는 그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의료진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일본은 생산 지연과 유럽연합(EU)의 수출 통제로 인해 백신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15일 화이자로부터 백신 21만6000 도스를 추가로 공급받은 일본은 현재 480만명 보건의료 종사자에 대한 우선 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