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널리스트 '사이버전의 은밀한 역사' 번역 출간

1998년 2월 미국 10대 소년 2명이 워싱턴DC 외곽 앤드루스 공군 기지의 주 방위군 컴퓨터를 해킹한 '솔라 선라이즈' 사건이 발생했다.

미연방수사국(FBI) 조사 결과 이들은 친구들과 누가 더 빨리 국방부(펜타곤)를 해킹할 수 있는 겨루는 중이었고, 이들이 이스라엘에 있는 청년에게서도 도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3월 오하이오주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 컴퓨터를 해킹한 '문라이트 메이즈' 사건도 일어났다.

해커는 조종석 설계도와 마이크로칩 구성도 등을 빼냈는데, 펜타콘을 대상으로 한 외국의 첫 해킹 사건으로 기록됐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 프레드 캐플런(67)은 '사이버전의 은밀한 역사'(플래닛미디어)에서 이런 사례를 제시하며 "사이버 공간은 이제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전장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이버 공격이 단순히 정보나 돈의 탈취를 넘어 다른 나라의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돕거나 국가 핵심 기반시설까지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책은 사이버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추진한 원자폭탄 제조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며, 비범한 해커와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누가 총탄을 많이 갖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누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잘 통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이버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미국이 사이버전에 대비해 국가안보국(NSA)을 어떻게 발전시켜왔고, 러시아와 중국, 이라크, 북한 등을 상대로 어떻게 사이버 공격과 방어를 수행했는지 등을 정리했다.

또 메타데이터(데이터에 관한 속성정보) 수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 기업과 정부 기관 사이 정보 공유 문제와 정보기관 불법사찰 문제,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어떻게 풀고자 했는지에 관한 생각도 담았다.

총성 없는 사이버 전쟁…누가 정보를 통제하는가
책은 2013년 6월 미중 정상회담 전날 NSA 전직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수집 관행을 폭로한 내용도 소개한다.

스노든은 NSA가 6만1천여 회의 사이버 작전을 수행했고, 홍콩과 중국 본토에 있는 수백여 대의 컴퓨터에 대한 공격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저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의 사이버 절도를 거론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영국 일간 가디언을 꺼내 보였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중국이 "우리는 해킹을 하지 않는다"에서 "당신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로 기조를 바꿔 미국의 비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2014년 11월 북한이 배후에 있다고 의심을 받은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도 언급한다.

'GOP'(평화의 수호자)라고 주장하는 해커들은 당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를 해킹했다.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 해킹을 "표현의 자유와 삶의 방식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공격에 비례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저자는 그로부터 며칠 뒤 북한의 인터넷망이 10시간 동안 차단됐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도, 이 사건이 미국 정부와 관련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백악관에서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공표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북한이 더 대립의 수위를 높이지 않았다"고 했다.

책은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을 막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사이버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기본 규칙을 마련하고자 범세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상문 옮김. 396쪽. 2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