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번역 출간

1960년대 등장한 2세대 페미니즘은 '급진적'이란 수식어를 갖는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참정권 쟁취에 주력한 것과 달리 미국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폭넓은 여성 문제에 참여했다.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를 개설했으며 낙태권과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한 행진을 벌이는 등 여성의 권리를 전국적이고 국제적으로 공론화했다.

필리스 체슬러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케이트 밀레트, 베티 프리던 등과 함께 2세대 페미니즘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여든의 체슬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책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바다출판사)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에서 2018년 출간한 이 책(원제 'A Politically Incorrect Feminist')에서 "이 회고록은 2세대 페미니즘의 역사가 아니다.

내 페미니즘 사상과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역사도 아니다.

이 책은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딸이 어떻게 성공했고 다른 이들이 갈 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반세기 넘도록 전장의 전사였던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치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투쟁기이자 승리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1940년 미국 브루클린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체슬러는 대학 때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첫 남편을 따라갔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지낸 다섯 달의 '억류'를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살기 시작했다.

1961년 카불에서 가부장제에 대해 글을 쓴 그는 1967년 전미여성연맹(NOW) 회의에 참석하고, 1969년 여성심리학회를 공동창립했다.

1970년에는 미국심리학회 측에 여성들에 대한 배상으로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최초의 여성학 과정 중 하나를 개설했으며 1971년에 강간에 관한 최초의 급진 페미니스트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1972년에는 '여성과 광기'를 출간했다.

저자는 회고록에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빛났던 순간들과 함께 어둡고 미숙했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서로에게 관대하다가도 서로를 질투했고, 연대하면서도 경쟁하기를 반복했다.

자신보다 앞서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웠지만, 먼지처럼 사라진 선배 페미니스트들을 무수히 목격했고 그들의 활동이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채 잊히는 현실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저자는 자신과 함께 수많은 여성 문제 앞에서 치열하게 연대한 동료들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의 이름과 활동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정치적으로 미숙하고 인간적으로 불완전했던 자신과 자매들에게 보내는 용기 있는 회고이자 위로로 읽힌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들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들을 헐뜯거나 따돌렸다며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 대부분은 지독하고 노골적인 싸움에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모든 갈등을 정치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어 냈다는 것이다.

체슬러는 "이제야 우리는 모든 여성, 즉 백인 여성이든 다른 인종의 여성이든 인종 차별을 내면화해 왔음을 이해한다"며 "그러나 성차별 반대 입장을 계속 고수하려면 매일 의식적으로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완전한 극복은 없으리라는 사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한, '남자 중독'에 가까운 상태였다는 저자는 페미니즘과 해방 투쟁, 책 쓰는 데 헌신해야 했으므로 남자 고르기로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어서 구하기 쉬운 남자들을 찾았을 뿐이었다면서 "나는 모든 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인 영웅들에 대해 쓰고 있다"며 "그들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해낸 일이지, 그들이 저질렀던 지독한 실수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여성들은 대부분 성차별적 가치들을 내면화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런 가치들이 아니라고 부연한다.

460쪽. 1만8천500원.
2세대 페미니즘 개척자 필리스 체슬러가 전하는 생생한 투쟁사
/연합뉴스